저녁밥 먹기를 마친다. 짱구가 경주씨에게 차 키를 달라고 말한다. 여량에나가 뭘 좀 사오겠다는 것이다."술과 안주겠지 뭘"하며 경주씨가 차 키를 넘겨준다. 경주씨가 할머니를본다. "할머니는 앉아 계세요. 시우씨와 밀린 얘기나 해요. 제가 설거지하고건넌방에 군불지필께요. 뒤란에 있는 나무 옮겨다 때면 되지요?""집에 온 손님을 그렇게 부려도 되겠소. 그냥 쉬구려. 내가 할테니""괜찮아요. 제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인걸요"
경주씨가 밥상을 들고 밖으로 나간다. 바깥은 어둠이 내렸다. 바람에 낙엽구르는 소리가 난다. 섬돌 밑 귀뚜리의 울음이 애처롭다.
"시우야, 이젠 정말 안 떠날거지? 이 할미하고 살거지? 지난 번에 왔던 젊은이가 또 와서 가슴이 털컥 내려앉았어. 널 데리고 가버릴 것만 같애"할머니가 내 손을 잡고 어룬다. 주름진 눈꼬리에 눈물이 잡힌다."안 갈거예요. 이제 저 정말 할머니 함께 살거예요. 아우라지 살고싶어요""그래, 생각 잘했다.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느냐. 너가 나를 너 아비 산소옆에 묻어줘. 암, 그래야지"
나는 할머니 손을 놓고 일어선다. 할머니가 놀라서, 어디 가느냐고 묻는다.
"건넌방 군불 땔께요"
"집밖으로 나가면 안돼"
"집 밖 안 나가요"
나는 부엌을 꿈 들여다본다. 전등이 환하다. 경주씨가 콧노래를 부르며 설거지를 하고 있다. 나는 뒤란으로 돌아간다. 달빛이 푸르다. 보름을 막 넘긴 달이다. 땔감나무가 쟁여 있다. 나는 나뭇단을 건넌방 아궁이로 나른다.건넌방은 아버지의 서재였다. 경주씨가 잠잘 방이다. 나는 부엌으로 간다.불쏘시개 갈비와 삭정이를 긁어 모은다.
"뭘 할려 그래요?"
경주씨가 묻는다.
"건넌방에 불때려 그래요"
"제가 할께요. 설거지 마쳤어요"
경주씨가 부뚜막의 성냥통을 들고 나선다. 건넌방 아궁이 앞으로 온다. 경주씨가 갈비에 불을 지핀다. 삭정이에 옮겨 붙인다. 삭정이가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불을 일으킨다. 나는 마른 장작을 그 위에 얹는다. 불꽃이 밝게 살아난다. 따뜻한 불기운이 얼굴에 닿는다.
"나무 타는 냄새가 참 좋네요"
경주씨가 나를 보고 웃는다. 아궁이 불빛을 받아 발갛게 익은 얼굴이다.나도 그런 말을 하고 싶었다. 나무나 낙엽을 태우면 그윽한 향기가 난다. "도시의 쓰레기는 악취를 풍기며 썩는다. 그러나 숲 속의 부러지고 넘어진 나무나 떨어진 낙엽은 향기를 뿜으며 썩지. 그게 바로 자연의 법칙인 다음 세대를 위한 물질순환을 이행하고 있기 때문이야. 낙엽을 태워봐. 그 향기가어떤지" 아버지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