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철 경주구간-결단못내린 끝없는 '평행로선'

입력 1995-12-19 00:00:00

경부고속철도 경주통과 노선문제는 지역의 핫이슈였다. 문화계와 경주시민들이 극한 대립양상을 보일 정도였다. 건설교통부와 문화체육부도 팽팽한 의견차이를 보였다. 아직도 대립은 지속되고 있다. 문화계 일부에선 여전히 서울-부산간 직선화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경주시민들은 건교부 확정노선대로건설하자고 주장하고 있다.건교부와 문체부가 최종 노선을 확정하기로 한 시한인 올해말까지 이러한논란은 거듭될 것이다. 어쩌면 건교부와 문체부가 합의 통과노선을 내놓더라도 '불씨'는 계속 남을지도 모른다. 양측을 만족시킬 대안을 제시하지 못할가능성이 적지않기 때문이다.

92년부터 논의된 경부고속철도 통과노선문제가 올해 뒤늦게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까닭은 무엇인가. 다른 지역은 탈이 없는데 유독 경주만 문제가됐을까. 경주 시민들이 유별난 사람인 탓인가. 아니면 문화계 인사들이 과민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인가.

경부고속철도 경주통과노선이 핫이슈로 부각될 조짐을 보인 것은 지난 3월이었다. 문체부가 경주통과구간에 대한 건교부의 실시설계노선(경주도심통과노선)에 제동을 건 것이다. 문체부는 역사.고고학회 등의 의견을 반영,건천을 역사로 하는 외곽우회노선 채택을 주장했다. 노선변경이 불가능하다면 경주지역 전통과노선을 지하화할 것을 요구했다. 신라천년 고도 경주의 문화재를 보호하고 경관을 보존한다는 명분이었다.

이에 대해 건교부는 난색을 표시했다. 노선을 변경할 경우 공사비가 더 들고(4조원) 공사기간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3년)고 주장했다. 지하화도 어렵다고 밝혔다. 이용객의 편의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또 지형적인 여건및 공사비 부담증가도 이유로 내세웠다.

3월중순부터 8월중순까지 5개월간 두 부처가 물밑에서 이견을 주고받던 경주통과 노선문제는 8월말 수면위로 떠올랐다. 문체부가 8월25일 경주통과 구간에 대해 유적발굴 유보조치를 취한 것이다.

이에 경주시민들이 들고일어났다. '경부고속철도 경주확정노선 사수 범시민협의회'란 단체까지 만들어 조직적으로 대항했다. 이 단체를 중심으로 경주시민들은 문체부는 물론 역사.고고학회 등 학계와 문화계 인사들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온 경주시내가 고속철도 경주통과를 주장하는 플래카드로 뒤덮였다.

경주도심통과를 주장하는 경주시민이 많았지만 경주에도 도심통과를 반대하는 낮은 목소리가 있었다. 경주지역의 여러 종교.환경.문화단체들은 외곽우회노선을 주장했다. 불국사 주지 설조스님도 9월말 도심통과를 반대하는단식에 들어가기도 했다.

학계.문화계 등에서 고속철도 경주도심통과 노선을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도심통과노선(동국대-옥녀봉-선도산 국립공원지구-왕경지구옆-경주톨게이트-망성리 국립공원지구-남산 국립공원지구)이 건천 등 우회노선보다 국가지정문화재 등 중요 문화재가 더 많이 분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지하화하는 구간을 제외한 나머지 구간은 고가화할 수밖에 없어 소음 등 환경피해는 물론 천년고도 경주의 경관을 크게 해친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북녘들에고속철도 역사가 들어서면 신도시 개발로 이 일대 역시 현재의 경주 시가지처럼 문화유적 파괴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건교부가 확정한 도심통과노선을 지지하는 경주상공회의소 등 경주시민들은 상반된 주장을 폈다. 건교부 확정노선이 우회노선보다 문화유적 파괴가 심하다고 하는 것은 실상을 모르는 소리라고 비난했다. 경주의 문화유적을 훼손하고 있는 것은 고속철도가 아니라 도심을 가로지르는 동해남부선등 국철이라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전체 GNP의 20%를 생산하는 포항.울산의 배후지역인 경주를 고속철도가 통과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이들은 주장했다.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적인 문화유적지인 경주를 찾는외국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서도 고속철도가 반드시 통과해야한다는 입장을밝혔다.

경부고속철도 경주통과구간을 둘러싼 논란은 천년 고도 경주의 '개발'과 '보존'에 대한 상이한 시각에서 비롯되고 있다. 고속철도 경주통과를 주장하는 측은 수십년간 문화재 보호를 이유로 경주가 개발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를 편다. 실제로 경주시민들의 문화재 피해의식은 심각하다. 1962년에 제정된 문화재 보호법과 1972년에 지정된 한옥미관지구.고도제한지구등 각종 제한조치로 인해 경주시민들은 일상생활의 불편은 물론 사유재산권까지 제약받고 있다. 그래서 고속철도라도 경주를 통과해 주민들의 개발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문화계등 보존에무게를 실고있는 사람들은 경주의 풍치를 보존하고문화재 파괴를 줄이기 위해서는 경주도심을 통과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있다. 그러나 보존을 주장하는 측도 경주시민들이 겪고있는 불편은 인정하고있다. 문화계 인사들도 문화재보호법의 개정과 고도보존법의 정비를 통한 개발과 보존의 병행을 역설하고 있는 형편이다.

경주시민 대부분은 건교부 확정노선이든 우회노선이든 경주만 통과하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있다. 그런데도 한사코 확정노선을 고집하는 것은 경주를통과않고 서울~부산간 직선화로 노선이 바뀌지 않을까 의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이 이렇게 꼬인 원인은 모두 정부에 있다. 문체부는 건교부가 노선을확정할 때까지도 아무말않고있다 문화계와 학계에서 문제를 제기하자,뒤늦게 건교부의 확정노선에 제동을 걸었다. 건교부도 천년 역사도시 경주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않고 형식적인 문화재 지표조사만을 거친 채 통과노선을 확정지어 분란을 자초했다. 아무튼두 부처가 경주통과노선에 대한 최종 결론을 내리기로 한날이 이제 10여일밖에 남지 않았다. 모두가 만족할 수있는노선 도출을 기대한다.

〈조영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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