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푸른나무(296)-제10장 아우라지의 희망

입력 1995-12-18 08:00:00

가을들면 산골은 낮이 짧다. 해가 빨리진다. 저녁밥 먹고나면 금세 어둑발이 내린다. 바람소리가 스산해진다."처녀는 손도 날래고 부지런키도 하우. 고향은 어디메요?"

저녁밥 먹을 때, 할머니가 경주씨에게 묻는다.

"저는 서울에서 태어났어요. 아버님 고향은 평안도구요. 어머니 고향이 호남이니 저는 우리나라 가운데서 태어났지요"

"양친은 다 살아 계시구?"

"아버님은 별세하셨어요. 몸이 불편한 상이용사였었거던요. 저는 다섯 형제의 막내야요"

"처녀는 대처에서 뭘하우?"

"몸이 불편한 아이들과 어른들을 돌보고 있지요. 그런 분들과 함께 생활해요"

"그래서 우리 시우도 알게 됐나요?"

"그렇다고도 말할 수 있어요. 한때 저는 장애복지원이라구, 할머니가 그런시설을 알는지 모르지만, 몸과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들을 돌보는 기관에서 근무했지요. 시우씨가 잠시 그곳에 있게 되어 알게 되었습니다""시우가 그런데 있었다구? 허기사, 어릴적에 얘 아비가 시우를 그런 데 맡겨 놓았던 적이 있었지"

"할머니, 고기드세요. 연세가 자실수록 고기를 드셔야 힘이 생겨요. 이빨이 좋지 않으실 것 같아 먹기 좋게 고기를 난도질했어요"

경주씨가 할머니 밥그릇에 불고기 도막을 얹어준다.

"우리집은 육질을 안 먹었다우. 시우 아비가 풀음식만 먹어서. 아비가 죽자 마을 사람들이 권해 어쩌다 조금씩 먹긴 하지만 맛을 제대로 모른다오.젊은 사람들이나 많이 들어요"

"할머니, 한가지 상의 말씀드릴게요. 제가 장애자를 열명 데리고 여기 싸리골로 들어오면 안될까요? 빈 집이 세 채나 되던데. 물론 그 사람들 먹고입을 건 제가 다 마련을 하겠어요. 시우씨가 그 사람들 위해 동무가 될 수있구요. 아니, 선생이 될 수 있어요. 시우씨도 많이 깨치게 되구 큰 보람을느낄거예요" 경주씨가 나를 본다. "시우씨, 그렇죠?"

"그렇죠? 예"

나는 엉겹결에 대답한다.

"시우 할머니 허락만으로 안될걸요. 장애자들이 들어오면 동네 버린다구어디 호락호락 허락할 것 같애요? 아무리 인심 좋은 마을이긴 하지만"짱구가 참견한다. 그는 밥 한 그릇을 비우고 물러앉는다.

"내일 아침 내가 이장님을 설득해 볼거예요. 여량에 나간김에 거기 중학교를 찾아 시우씨 아버지 얘기를 들었어요. 시우씨 부친을 참교육의 스승이요농촌운동가였다고 칭찬합디다. 제가 그 뒤를 이어 보겠어요. 시작해보는 거죠. 저는 안될 게 없다고 보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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