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푸른나무(288)-제9장 죽은 자와 산 자(33)

입력 1995-12-08 08:00:00

이튿날, 아침밥을 먹고 나서다. 경주씨가 반코트를 입고 핸드백을 메고 나선다. 식구들 점심밥은 비닐하우스 안주인 박 집사가 와서 차려줄 거라고 말한다. 오후에는 자원봉사 여학생 둘이 올거라고 한다."저는 시청 사회과에 들렀다 서울 좀 다녀오겠어요. 장애자들에게 재활교육을 시켜야 하는데 이렇게 수용만 하고 있으니 미치겠어요. 부지런히 대책을 마련하려 동분서주하지만 다리품만 팔고 다니니"

경주씨가 방안에 옹골송골 앉아 있는 장애자들을 둘러보며 눈을 씀뻑인다.안경을 벗더니 눈꼬리를훔친다. 짱구에게, 난로 연탄불을 보아달라고 부탁한다.

"경주씨, 나도 부탁 좀 합시다. 요즘 세상에 전화 없는 집은 처음 보우"짱구가 휴대폰의 충전용 케이스를 뽑아낸다. "휴대폰이 불통이요. 올 데도있구 연락할 데도 있는데. 전파상에 가서 충전된 걸로 교환해 오든지, 이걸충전해 오든지 해줘요"

짱구가 주머니에서 지폐 두 장을 꺼낸다. 충전용 케이스와 함께 경주씨에게 넘긴다. 경주씨가 그걸 핸드백에 받아 챙긴다.

"아저씨, 나 갔다 올께요. 얘들아, 언니 다녀오마. 하우스 마당은 괜찮은데, 한길에는 나가지마"

경주씨가 장애자들에게 이르곤 방을 나선다.

짱구가 머리 붕대를 풀며 소독을 해야겠다고 말한다. 나는 그 일을 도운다. 머리통은 깨져 상처가 크다. 벌겋게 부풀었다. 나는 상처 부위에다 머큐로크롬을 발라준다. 손등도 마찬가지다. 붕대를 다시 감아주고 나자, 나는할 일이 없다.

"아쩌씨, 노올자"

빡빡머리 사내아이가 내 옷을 당긴다. 머리가 크고 이마에 파란 심줄이 보인다. 나를 보고 생글생글 웃는다. 이제는 두렵지가 않다.

"그래, 놀자. 얘들아, 밖으로 나와"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방을 나선다. 아이들이 뒤뚱거리며 따라 나온다. 바깥은 바람이 몹시 분다. 하우스 안마당에서 놀기로 한다. 함께 놀 아무 기구가 없다. 공조차 없다. 다섯 아이가 나를 에워싼다. 사내아이가 셋, 계집아이가 둘이다. 세살에서 너더댓살 쯤 된 아이들이다.

"노래하며 놀자. 따라 불러봐"

나는 손뼉을 치며 산토끼 노래를 부른다. 나는 곡은 물론 가사조차 제대로부르지 못한다. 아무렇게나 부르며 제자리걸음 걷기를 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며 따라 부른다. 말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신이 난다. 나를 따라 하는 아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다른 노래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산토끼 노래만 계속 부른다. 아이들도 열심히 따라 한다.

"미안한 말이지만, 병신들끼리 잘들 놀고 있네"

짱구가 방문을 열고 웃으며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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