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푸른나무(281)-제9장 죽은 자와 산자 ?

입력 1995-11-30 08:00:00

택시가 시내를 빠져 나간다. 경주씨와 걷던 눈 오던 밤이 생각난다. 우리는 차를 밀거나, 걸었다. 그날 무진장 눈이 내렸다. 차가 교외로 빠진다. 비닐하우스 마을이 나선다. 택시가 비닐하우스촌 입구에서 멈춰선다. 나는 쥐고 있던 돈을 준다. 기사가 거스름돈을 내게 돌려준다. 나는 택시에서 내린다.건너쪽에 시커먼 잿더미가 보인다. 비닐하우스 여러 동이 불에 타버렸다.나는 첫 비닐하우스부터 그 안을 들여다본다. 어느 하우스에는 철쭉꽃, 진달래꽃이 만발하다. 봄이 아닌데도 꽃이 핀다. 어느 하우스엔 관음죽, 행운목,벤자민이 푸르다. 하우스 안이 한 여름 같다. 분재들만 가꾸는 하우스도 있다. 땅으로 눕는 땅땅한고목을 보자 꼬마가 생각난다. 그는 일본도를 쳐들고 덤볐다. 그가 내 등을 내리쳤다. 쌍침형을 업지 않았다면, 내가 죽었다.아니, 쌍침형을 내가 죽였다. 내가 업었기 때문이다. 꼬마를 포함한 쥐떼는애마 룸싸롱에서 우리 식구들에게 당했다.

갑자기 은은한 향기가 코 끝을 슬쩍 스친다. 은은하면서도 강열한, 신비로운 향기다. 강한 자극이 없는데도 향기는 짙다. 나는 문이 열려 있는 비닐하우스 안을 들여다 본다. 난을 재배하는 하우스다. 양란과 동양란이 들이찼다. 양란은 키가 크고 꽃이 화려하다. 동양란은 잎이 가늘고 꽃이 소담하다.난들이 긴 받침대 위에 줄줄이 진열되고 있다. 나는 그 향기를 흠흠 맞는다.정말 난 향기는 향기 중에 향기다. 아카시아, 국화, 장미 향기는 눈에 보이듯 코로 달려든다. 난향기가 은근하게 코에 스민다. 향기가 없는듯 한데, 흠하고 마시면 슬쩍 향기가 빨려든다. 난 향기는 아버지가 말한, 산소 중의 산소다. 나는 정신없이 그 향기에 취한다. 짱구를 찾을 생각도 잊고 나는 하우스 앞에 서 있다.

"학생, 뭘 찾아?"

머리수건 쓴 아주머니가 묻는다. 안쪽에서 동양란 분갈이를 하고 있다."차, 찾지 않아요"

나는 비닐하우스 앞을 떠난다. 다음 하우스에는 행운목이 많다. 다음 하우스에는 엄청 큰 소철이 눈에 띈다. 나는 건넌편을 본다. 그쪽은 소채류를 재배하는 비닐하우스가 많다. 열린 문으로 상추와 쑥갓이 자라고 있다.나는 비닐하우스 앞에 나앉은 노인을 본다. 석양 볕을 쬐고 있다. 체머리를 떤다. 무엇인가 오물오물 먹고 있다. 눈에 익은 노인이다. 언덕바지 굴집동네, 경주씨 방에서 보았던 노인이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겨, 경주씨 어디 있나요?"

"경주씨? 선생님?"

노인이 비닐하우스 뒤쪽을 가리킨다. 비닐하우스 옆으로 길이 나있다. 나는 골목길로 들어간다. 비닐하우스 지붕에 헌담요를

씌운 가건물이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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