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푸른나무(279)-제9장 죽은 자와 산 자(20)

입력 1995-11-28 08:00:00

나는 점퍼를 들고 수돗간으로 간다. 흐르는 수돗물에 점퍼를 빤다. 비누칠을 한다. 열심히 비벼 핏자국을 없앤다. 가건물 의자를 밖으로 내온다. 점퍼를 의자 등받이에 펴서 넌다. 이제 할일이 없다. 배가 고프다. 옥상에서 나갈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호텔 주위로는 경찰이 깔렸을 터이다. 심심풀이로텔레비전을 켠다. 화면에 퍼뜩이는 줄만 나온다. 해가 기운다. 따뜻한 낮이지나고 찬바람이 분다. 의자에 널어둔 점퍼가 말랐다. 피가 말끔히 빠졌다.내가 점퍼를 입을 때다.누구인가 문을 두드린다. 심장이 털컥 내려앉는다.경찰인지, 넙치인지 알 수 없다. 나는 가건물로 들어온다. 문을 닫다 빼꼼히열고, 철문을 본다. 귀를 기울인다. 누구인가 철문을 발길로 찬다. 지난 겨울, 흥부식당에서도 그랬다. 그때는 깊은 밤이었다."아무도 없냐. 넙치, 마두 없어?"

계단에서 누구인가 나를 부른다. 듣던 목소리다. 빈대아저씨 목소리가 틀림없다. 나는 가건물에서 나온다. 철문 쪽으로 고양이걸음을 걷는다."이상한데, 안에서 문을 잠궜잖아. 넙치나 마두 없어?"

"닦슈아저씨 맞지요? 저 마두예요."

나는 비로소 철문을 연다. 빈대아저씨다. 코 밑에 구두약이 묻어 있다."너 여기 있었군. 여기서 뭘해?"

"뭘요? 숨어 있어요"

"너가 무슨 일을 저질렀다구. 널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가자구. 밥도굶었겠구나"

"굶었어요. 배가 고파요"

"내려와. 내가 안 찾았담 굶어 죽었겠어"

나는 빈대아저씨를 따라 계단을 밟는다. 국시집 건물을 나선다. 거리는 예전과 다름없다. 통행인들이 무심히 나다닌다. 차들도 마찬가지다. 어젯밤 사건이 언제였나 싶다. 아저씨와 나는 구두박스로 간다. 벌룸코형이 나를 보고흐물쩍 웃는다.

"멍게야, 마두 떡만두국 한 그릇 시켜줘"

빈대아저씨가 말한다. 빈대아저씨가 구두를 닦기 시작한다. 나는 그 옆에쪼그리고 앉는다.

"짱구 쪽에서 삐삐가 왔어. 여자더군. 널 찾아. 만두국 먹고 거기로 가봐."

빈대어저씨가 말한다.

"거기로? 어디요?"

"온주 나가는데, 비닐하우스촌에 짱구가 있대. 너도 안담서?""비닐하우스? 몰라요"

"비닐하우스들을 뒤져봐"

나는 그제서야 그곳에 경주씨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병신들과 함께 비닐하우스에 살아" 하고 짱구가 언제인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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