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대통령 부정축재사건의 여파로 재계가 흔들리고 있다. 당초에는단순한 '비자금' 사건 정도로 불거졌던 이 사건이 사상유례없는 거액의 부정축재 사건으로 바뀌면서재벌들이 갖다준 돈의 성격도 정치자금에서 사업과관련있는 뇌물성 자금으로 규명됐다.혁명적 상황에 비견되는 재벌 총수들에 대한 잇단 소환에 이어 검찰이 6공당시 모든 국책사업과 관련된 재계의 중진 임원들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자해당 그룹들은 정보력을 검찰과 정부쪽에 집중, 그룹내 정보의 유출을 단속하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재계에서는 검찰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그룹들의 그늘진 부분을 낱낱이파악하기 위해 철저한 수사를 하겠지만 총수 또는 관계 임원들에 대한 사법처리는 최소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이같은 사법처리에 따른 고통은시간만 지나면 자연히 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는 오히려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쪽에서 다시 거론되고 있는 재벌정책에 대한 변화의 조짐에 대해 더 큰 두려움을 갖고 있다.
이홍구 총리는 최근 국회 예결위 답변에서 재벌구조를 바꾸기 위한 정책건의안을 마련중이며 이달말 또는 늦어도 내달초까지 이같은 정책건의가 대통령에게 보고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아직 정확한 시안이 발표되지는 않았으나 기업경영에관한 재벌들의권한을 대폭 줄이기 위해 계열사의 운영을전문경영인이 책임지도록하는 장치와 소액주주들의 의사를 반영하기 위한 '사외 이사제'나 '사외 감사제'의 도입 등이 재벌구조 변화정책의 골자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검찰의 조사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하고 자숙의 분위기를 보이던 재계는 정부의 이같은 '신재벌정책'의 움직임이 전파되자 예민하게 반응하며 발빠른대응을 보이고있다.
재계는 지난 15일 소유주의 변칙적인 경영을 막기 위한 방안을 정부가 적극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지자 즉각 경위파악에 나서 외부감사제가 외국에서도 성공을 거두지 못한 제도며 우리나라의 풍토에는 맞지 않는다는 논리를내세워 이 제도 도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재벌의 소유분산 문제가 거론될 때 마다 재계는 항상 이같이 일관된 논리로 정부측에 반발해왔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 재벌그룹들이 느끼는 '압박'은과거와 다를 수 밖에 없다.
재계가 우려하는 점은 검찰의 비자금 수사 과정에서 대기업의 각종 영업비밀들이 적나라하게 노출됐다는 점이다. 앞으로 세무당국이 기업들의 비자금장부를 샅샅이 들춰낸다면 기업으로서는 사정당국에 결정적인 약점을 잡힐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의 한 임원은 "이를 무기로 삼아 정부가 본격적인 '재벌 길들이기'에 나선다면 속수무책"이라면서 "지금까지 정부의 '재벌 길들이기' 엄포를종이호랑이쯤으로 치부했으나 이제는 날카로운 발톱을 지닌 무서운 호랑이로변모하게 된 셈"이라고 말했다.
정부쪽에서 흘러나오는 재벌 소유구조의 개편 요구를 과거에는 정책입안자들의 단순한 '아이디어'쯤으로 여겼지만 지금같은 상황에서는 본격적인 '재벌 길들이기'의 서곡으로 볼 수도 있다고 재계 관계자들은 지적했다.경제단체의 한 임원은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고 재벌총수들이 줄줄이 검찰에 불려가는 사상 초유의 상황을 겪은 마당에 재벌의 소유분산 논쟁이 과거의 예처럼 흐지부지 넘어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주요그룹들은 기업구조조정 또는 계열사 정리 등의 형태로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중압감을 느끼고 있다.
모그룹 관계자는 "정부차원에서 먼저 재벌의 소유분산 방법을 제시하기 전에 재계가 먼저 소유분산 일정을 내놓는 것이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대·삼성·LG·대우 등 주요그룹들은 이미 지난해와 올해초 그룹구조조정계획을 발표, 현재 계열사 지분정리 등의 절차를 밟고 있기 때문에뾰족하게 제시할만한 '카드'가 없다는 점에서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재벌그룹들은 "현재와 같이 권한이 지나치게 강한 정부가 독과점에 대한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한 특혜시비와 정경유착의 소지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규제철폐 등을 통해 정경유착의 소지를 없애는 작업이 재벌소유구조개선보다 먼저 전개돼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칼자루를 쥔 정부와 사정당국에 맞서 재벌그룹들이 얼마만큼 자신들의 입지를 방어할 수 있을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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