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SF영화를 만드는 필수도구

입력 1995-11-16 08:00:00

전자문명의 중핵으로 떠오른 컴퓨터가 SF영화를 만드는 필수도구이자 '출연자'로 등장하고 있다. '코드네임 조' '네트' '가상현실'(Virtuosity)등 최근 국내에 소개된 이들 미국영화는 웬만큼 컴퓨터 용어나 지식없이는 극전개를 따라잡기조차 힘들다.이들 영화를 비롯한 상당수의 SF영화는 흥행을 겨냥, 테크놀로지에 눌리는인간의 불안심리보다 주인공의 영웅담을 부각시키고있다. 따라서 '안정-혼란-주인공의 맹활약-안정회복'이라는 할리우드 오락영화의 정형화된 구도를 답습한다. 평온스런 마을에 극악한 악당이 나타나 온갖 나쁜짓을 자행하지만홀연히 등장한 존 웨인 같은 보안관이 차례차례 적을 무찔러 예전의 평온을되찾는다는 선악 대결구도로 영화의 씨줄과 날줄을 엮는다.영화 '네트'의 경우 인터넷, 패스워드, 데이터베이스 등 컴퓨터 용어들이나오고있어 관객들의 지적호기심을 자극한다. 개인정보가 전산망에 모조리입력되는 사회에서 누군가가 이 전산망을 조작할 경우 일어날 수 있는 인간의 정체성 상실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나름대로의 가치를 인정받고있다.

그러나 옷만 갈아입은첨단시대의 서부극이라는 비판도 만만찮다. 총솜씨대신 컴퓨터지식으로 중무장한 정보화 시대 여자보안관인 주인공은 국가 기간전산망을 장악하려는 거대한 악당조직의 음모를 홀홀단신으로 분쇄한다.테크놀로지는 악역으로 긴장구조를 제공한뒤 주인공의 영웅담을 위해 자리를 비켜준다. 인간의 이성적 통제를 벗어난 테크놀로지가 빚어낼지도 모를디스토피아에 대한 경고 메시지는 극장을 떠나면 이내 잊혀진다.대개의 오락지향 SF영화는 테크놀로지에 관한 진지함이나 통찰력 부족으로정보화 사회에 대한 막연한 부정적 인식을 불러일으킬 소지도 크며 세부묘사와 예측에서 오류와 왜곡이 적지않다. 가령 공기가 없는 우주를 나는 슈퍼맨의 망토가 펄럭이는 식의 잘못이 반복되고있는 것이다.

실베스타 스탤론 주연의 '어쌔신'에서는 목욕탕에서 노트북컴퓨터를 두드리는 장면이 나온다. 감전의 위험이 높은 상식밖의 행동이 아닐수 없다.지금 상영중인 '가상현실'의 경우 경찰을 훈련시키는 가상현실 프로그램이지능을 가지고 인간에게 해를 끼친다. 인공지능에 대한 학계의 논쟁이 끝나지 않은만큼 여기까지는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 프로그램이결국 '터미네이터2'에 나오는 T1000처럼 부숴도 죽지 않고 재생되는 인조인간의 형태로 변신해 LA를 난장판으로 만든다는 발상에 이르면 황당해진다.'네트'는 차안에서 노트북으로 무선데이터통신을 이용해 경찰의 범죄 데이터베이스 자료를 마구 드나들며 특정개인의 전과자료를 바꿔치기 하는 상황을 설정하고 있지만 전문가들로부터 현실성이 결여됐다는 지적을 받고있다.영화사를 돌이켜보면 아트필름으로 분류되는 SF영화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요즘의 할리우드의 영화 생산소비 구조에서는 인류문명 진화에 대한 철학적 사색을 담은'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스탠리 큐브릭 감독.1960년작)같은 걸작이 다시 태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여 아쉬움을 남기고있다.〈김해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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