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푸른나무(258)-죽은자와 산자(3)

입력 1995-11-03 08:00:00

나는 안방으로 들어간다. 삼단 장롱, 화장대가 있다. 살림이 간출하다. 은은한 향내가 난다.여자 방 내음이다. 채리누나가 소반을 내 앞으로 밀어 놓는다. 과일접시와송편접시가 얹혀 있다. 나를 보고 먹으라고 말한다. 나는 휴게소에서 국수를먹었다. 배가 헐출하다. 쑥송편을 집어든다.

"얼마나 울었으면, 눈이 부었구나. 할머니 두고 오자니 섭섭했지?"나는 머리를 끄덕인다. 나는 할머니한테 인사를 올리지 못하고 왔다. 도망치듯 여량을 떠나왔다. 순옥이의 시신도 아우라지에 그냥 두었다."예정대로라면 하룻밤 더 자고 와야 하는데, 급한 김에 내가 불렀다. 짱구가 형님을 지켜야 하기에. 마두 너한테 미안하구나" 채리누나가 숨길을 고른다. 내가 보기도 누나의 배가 너무 부르다. "참, 복지원 아가씨 경주씨랬나,어제 저녁 단란주점에 다녀갔어.추석을 어찌 보내나 싶었던지, 너 보러 왔더라. 짱구와 고향에 갔다니깐 좋아하더군. 네가 다시 올라올 거라니깐 조만간 들르겠대. 널 아주 고향에 보내주라더라. 내가 형님께 말은 하겠지만 어디 내 말 듣는 분이니"

"아우라지로 가고 싶어요"

내 목소리가 울음에 잠겨든다.펑펑 울고 싶다. 보내만 준다면 나는 지금이라도 아우라지로 가야한다.

"이번 일만 잘 수습되면, 널 고향으로 보내주마. 내가 약속할게" 채리누나가 한숨을 포옥 내쉰다. "일이 왜 이렇게 꼬이는지 몰라. 출산이 가까워 내가 단란주점 나가기가 어렵잖니. 당분간 예리한테 맡기려 했더니. 그 일도텄고. 경란이한테 맡겨야지. 갠 손버릇이 어떤지 몰라"

방문이 열린다. 짱구가 큰 머리통을 들여 민다. "아저씨 가신대, 인사해"하고 짱구가 내게 말한다. 나는 거실로 나온다. 채리누나도 나온다. 빈대아저씨가 현관을 나선다. 아저씨는 서나앉으나 키가 비슷하다. 아저씨의 다리는 짧아도 너무 짧다.

"속 끓이지 마. 몸만 버려. 내가 도식이 쪽 동태를 살펴 자주 보고해 주마."

빈대아저씨가 쌍침형에게 말한다. 현관을 나선다.

"아저씨, 이것 가져가요. 한과예요. 애들하고 드세요"

채리누나가 두툼한 종이팩을 건네준다.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 고맙게 먹겠어"

빈대아저씨가 나간다. 채리누나가 현관 문을 잠근다. 쌍침형이 채리누나에게, 방에 들어가 있으라고 말한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쌍침형이 짱구를 본다.

"도식이를 꺾어야 해. 그 길밖에 대안이 없어"

"꺾는다면, 어떤 방법으로요?"

짱구가 묻는다.

"이 바닥을 떠도록 만들어야지"

"그럼 큰성님이 허락을…"

"일치고 뒷 보고를 할 수밖에. 말로선 안 될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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