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론(신현직·계명대교수 법학)-새로이 시작해야 한다

입력 1995-11-03 08:00:00

온국민이 들끓고 세계 언론이 주목하고 있는 사상 초유의 노태우씨 비자금사건은 한국의 정치와 사회의 총체적 모순과 비리가 최대한 집약적으로 표출된 역사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총체적 모순 결정판

불법적인 정치자금 조성이 문제가 된 것은 5·16군사정부에서 공화당을 창당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던 증권파동 등의 3대의혹사건부터라 할 것이다. 유신이후 박정희씨는 언제든지 마음대로 돈을 만들 수 있었고 죽을 때까지 권좌에 있을 생각이었기에 따로 돈을 숨겨둘 필요가 없었을 것이지만, 5공 초기 권력형 비리척결이란 이름아래 재산헌납을 받았던 전두환씨도 5공비리 청산이란 명목으로 백수십억원을 헌납했었다. 선거공약에서부터 줄곧 깨끗한정치를 외쳐대던 노태우씨는 집권기간 동안 사상최대의 돈을 모았고 물러난지 2년반이 넘도록 수천억을 숨겨두고 있었던 사실이 이제야 밝혀지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정권획득 과정에서부터 정통성이 없었던 과거의 군사정권들은 재벌위주의 성장정책을 추진하면서 권위주의적인 독재권력의 힘으로 각종 특혜와정치자금을 교환하는 관행을 30여년간이나 지속시켜왔던 것이다. 그러나 관행은 법의 심판도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죄의식조차 없이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그러한 정치자금으로 야당길들이기의 정치공작까지 수행함으로써 정치를 타락시키고 장기집권체제까지 구축하였다. 81년 전두환씨는 법을 고쳐 자신이 퇴임후 국정자문회의 의장이 되도록 해두고 연금액도 대통령 봉급의70%에서 95%로 인상하기도 하였을 뿐 아니라 지속적인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막대한 비자금을 조성하였다. 그러한 과정에서 이른바 '성역'까지만들어졌으니 결국 온갖 부정부패가 온나라에 만연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던것이다.

*'법대로 수사'국민기대

'성역없는 수사','법대로 처리'란 말이 과거처럼 정치적 수사로서가 아니라 이번에는 정말 실현되어야 한다. 아울러 재발방지를 위해 법제도적 보완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번 사건을 최초로 공개한 은행원을 비밀유지의무 위반이라고 고발부터 하는 법제가 아니라 뇌물 비자금 탈세등의 불법자금에 대해서는 신고의무를 부과하고 돈세탁을 처벌하는 금융실명제의 보완입법이 필요하며, 정치자금법에서도 처벌의 강화, 공소시효의 완화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건국후 최대의 총체적 비리인 이번 사건에 대해 철저한 법집행과 법보완이 이루어져서 그러한 정경유착과 정치비리는 이젠 끝을 내야 한다.한편 7년전 노태우 후보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보냈고 현정부에 들어와서소위 TK정서란 말로 거부감을 표현했다고 생각되는 대구 경북 사람들의 반응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노씨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는 당연한 것이겠지만 이번 사건으로 지난 30년의 정권창출지로서의 소위 TK자존심에 상처를입었다고 보아서는 안된다. 그동안 정권이 경제성장의 업적을 이룩한 이면에는 이와 같은 독재권력의 부패구조도 함께 성장시켰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에 그것은 더이상 자존심일 수 없다. 더구나 5·18의 인명보다 돈이 더 우선일 수 없음에야.

*자존심 회복 계기로

진정한 대구경북의 자존심은일제에서 자유당 정권까지 많은 우국지사들과진취적인 정치지도자들을 배출하였다는 사실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한 전통이 단절되고 독재권력과총체적 부패가 경제성장이란 명분으로 은폐되어 온지난 30년은 이 지역출신의 인재들과 모든 지역민에게는 사실상 질곡의 시간이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번 사건을 통해 돈과 권력이 최고의 가치인 양 착각해온 지난 시간들의 굴레를 빨리 극복하고 교육과 문화의 본향으로서의 자존심, 국가와국민을 위한 참다운 인재들의 배출지로서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전기를 마련함으로써 진정한 정치지도자와 새로운 정치세력을 길러내는 작업을 새로이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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