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씨 사찰은둔 확고한 심판 전제

입력 1995-11-01 08:00:00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파문이 사실로 확인되면서 그의 거취문제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비록 사과는 했다고 하나 대국민 감정상 구속수사가압도적이고 보면 뇌물수수나 횡령 등 비자금 조성에 따른 죄과는 톡톡히 치러야 할 것이다.그런데 일각에서는 대국민 사과이후 낙향을 유도할 것이라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중에도 대구·경북지역의 사찰이 거론되고 있는 모양이다. 안될말이다. 어째서 죄지은 사람들은 불사로 들어가야 하는가. 중생을 구제하고마음의 정진과 수양을 이루도록 도와야 할 절이 어째서 죄인들의 은신처가되어야 한단 말인가. 그것도 국민들에게 큰 죄를 지은 대역죄인들을 정치적사면이라는 의미에서 도피시키는 꼴이라면 더욱 안된다.

현대사에 큰 오점을 남긴 사람들이 한번 지나간 불사라면 싫든 좋든 새로운 의미로서 현대인에게 각안될 수 밖에 없다. 전두환씨가 방문했던 백담사가 그 좋은 예이다. 만해 한용운 선생의 자취와 얼이 듬뿍 담긴 곳. 그래서조국독립을 염원하고 겨레의 발전을 기원했던 역사적 장소가 되어야 할 그곳이 오늘날에는 유배지의 대명사로 꼽히고 있다.

지금 노태우씨와 관련해 거론되는 사찰은 동화사, 직지사, 파계사 등이라고 한다. 모두다 대구와 경북을 대표하는 유서깊은 절이다. 수백년 이어온이런 사찰들을 단 하룻만에 유배지로 전락시켜서는 안된다. 어디까지 이곳은'보통사람'들이 찾는 마음의 안식처요 고향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물론 진정한 불심과 정진의 뜻이 있다면 죄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도량은 자비의 정신으로 그들을 받아들일 수도 있는 문제다. 그러나 여기에도 조건이 있다. 확고한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하며 한줌 부끄럼없이 진실을밝혀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그것이다. 사찰은 반성과 수양을 위한 도량이지은둔과 도피의 장소는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에야 노태우씨의 낙향과 거취문제를 논의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염명귀(부산 동구 범일6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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