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부터 절을 해. 두번 큰절하고 한번은 반절만 하면 돼"할머니가 말한다.차례를 지낼때 아버지도 그런 말을 했다. 나는 넙죽 엎드려 절을 한다. 많이드세요 아버지, 하고 나는 입속말로 말한다. "혼령이 와서 차례상을 살피지.그래서 정성을 다해야 한단다. 혼령이 실제로는 음식을 먹지 않지만, 마음으로 먹고 가지" 아버지가 말했다. 두번째 절을 할 때다. 순옥이가 돌아오게해줘요, 하고 나는 입속말을 한다. 세번째 절을 할 때다. 할머니가, 그만해도 된다고 말한다."잔에 술을 쳐. 너 아빈 약주를 좋아하지 않았니. 오래는 귀한 햇곡으로빚은 술이다" 할머니가 말한다.
나는 사발에 주전자 술을 따른다. 뿌연 막걸리다. 할머니가 그 사발을 받아 교자상에 올린다.
"아비야, 올해 가윗날엔 네 아들이 술잔을 올린다. 이렇게 장성해서, 똑똑해져서 돌아왔어. 돈 벌어와 이 할미한테도 주고. 얼마나 장하냐. 너가 살아이 자식을 봤다면…"
할머니가 물코를 들이킨다. 손등으로 눈자위를 훔친다. 이제 할머니가 절을 한다.
"아버지한테 절해요?"
내가 묻는다.
"아냐. 네 할아버지한테"
나는 할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 일제때 징용가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할아버지는 무덤이 없다.
갑자기 고샅길이 시끄럽다. 나는 까치발로 담장 너머를 기웃거린다. 말소리가 들린다.
"이 좋은 날에 무슨 액변인가" "새파란 나이에 왜 죽었을까" "이장님, 어서 지서에 신고를 해야지요"
나는 댓돌로 내려선다. 신발을 신고 부리나케 마당을 나선다. 춘길형, 윤이장, 칠배아저씨가 고샅길로 걸어온다.
"시우야, 예리란 그 여자, 죽었어. 시신을 막 건졌어"춘길형이 말한다."건졌어요? 어디 있어요?"
"공회당 마당에. 거기 사람들이 있어"
나는 고샅길로 내닫는다. 공회당 마당에 사람들이 몰려있다. 한 켠에 승용차가 여러대 있다. 짱구가 몰고 온 차도 섞여있다. 둘러선 사람들이 짓떠들어댄다. 나는 사람들 너머로 안을 들여다 본다. 비닐로 무엇인가 덮어두었다. 비닐 끝으로 발이 보인다. 푸르죽죽한 발이다. 엄지발톱에 붉은 메니큐어를 칠했다.
"물러 서세요. 경찰이 올때까지 시체를 보전해야 해요"짱구가 말한다. 순옥이가 정말 죽었다. 아우라지로 와서 죽었다. 순옥이는 죽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