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푸른나무(238)-강은 산을 껴안고(31)

입력 1995-10-11 00:00:00

제8장 강은 산을 껴안고 31사진속의 아버지는 머리카락이푸스스하다. 구레나룻이 시커멓다. 넥타이를 매지 않은 와이셔츠 차림이다. 우묵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사진은왜 찍어 하는 표정이다. 나는 그 사진을 와이셔츠 주머니에 넣는다.방을 나선다. 마당을 질러 아래채로 간다. 헛간, 봉당, 골방이 있다. 골방문을 열어본다.체와 소쿠리들만 걸려 있다. 헛간문을 열어본다. 돌쩌귀가삐걱 소리를 낸다. 농기구, 멍석, 헌 문짝 따위들이 먼지를 쓰고 있다. 한켠에 판자로 만든 썰매가 뒤집어져 있다. 송천에서 내가 타던 썰매다. 아버지가 만들어주셨다. 나는 집 뒤란으로 돌아간다. 오동나무와 후박나무가 우뚝 서 있다. 아직도 푸른 잎을 한껏 떨치고 있다. 변하지 않은 자태로 나를반긴다. 평상에는 붉은 고추를 널어 놓았다. 두꺼비는 보이지 않는다. 두꺼비는 비가 와야나타난다. 텃밭에는 무와 배추가자라고 있다. 터밭 뒤쪽,비닐하우스는 뼈대만 앙상하다. 아버지가 온실로 사용하던 비닐하우스였다.겨울에도 화분마다 온갖 야생화가 피어 있었다. 이제는 잡초만이 수북이 자랐다. 나는 문득, 순옥이가 돌아오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다시 고샅길로 나선다.

"시우야, 어디 가니?"

실례댁이 깻단을 들고 오며 묻는다.

"어디요? 산에요. 모두 아버지 산소에 있어요"

"그래, 어서 다녀와. 벌초하고, 내일은 성묘를 해야지"

나는 걸음을 서둔다. 수수밭을지난다. 개울을 따라 오른다. 묘터로 가지않고 솔바위 쪽을 택한다. 순옥이가 그리로 올라갔다. 잡초 사이 오솔길이숨어 있다.

"예리, 어딨어?"

내가 외쳐 부른다. 대답이 없다. 순옥이는 죽고 싶다고 말했다. 솔바위 꼭대기에는 절벽이 있다. 그 절벽에서 뛰어내리면 죽는다. 소년적이다. 곰보아저씨가 오복이를 업고 솔바위에서 내려왔다. 오복이는 피투성이었다. 아이들이 솔바위에서 놀다 오복이가 떨어졌다고 말했다. "넌 애들 안 따라가서 액을 면했다" 할머니가 내게 말했다. 오복이는 그날 밤, 죽었다. 오복이는 산에 묻히지 않았다.

나는 허겁지겁 산길을 오른다. 싸리숲을 지난다. 키 큰 솔밭이 나온다. 갈잎이 쌓여 있다. 뛰다 나는 소나무 겉뿌리에 걸려 넘어진다. 일어나 다시 바삐 걷는다. 예리, 순옥이를 번갈아 부른다. 대답이 없다. 메아리만 돌아온다. 땀이 난다. 절벽 바위 앞까지 올라간다. 벼랑 모롱이를 돈다. 솔바위에올라선다. 아무리 살펴도 순옥이는 보이지 않는다. 발 밑을 내려다본다. 아찔하다.

"예리야, 순옥아!"

나는 목청껏 외쳐 부른다. 대답이 없다. 나는 솔바위에 털썩 주저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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