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 달라니깐. 넌 할머니나 돌봐"짱구가 전지가위를 뺏아든다. 그가 가위질을 한다. 나보다 솜씨가 민첩하다.
"벌초는 왜 할까. 겨울이 닥치면 추울텐데"
순옥이가 혼잣말을 한다. 들국화다발을 아버지 무덤 앞에 놓는다."춥나 안춥나, 시우 아버지한테 물어봐"
짱구가 말한다. 그는 열심히 가위질을 계속한다.
"난 묻히지 않을테야. 묻히는 건 싫어. 화장해서 뼛가루를 바람에 날려보내든지, 강물에 풀어버려. 그렇게,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싶어""유언 맞지? 반드시 죽어야 돼. 그럼 소원 풀어 주마. 키유처럼 호텔에들어가면 들어줄 수 없지만"
할머니가 엉금엉금 기어온다. 무덤 앞에 쓰러진다. 두 손으로 잔디를 쓰다듬는다. 할머니 손이 거미발 같다. 할머니가 오열을 쏟는다."아비야, 너가 죽은지 벌써 네 해째. 이제는 저승살이도 터가 잡혔을 테지. 집 짓고 밭 갈아 이 어미 오기 기다리겠지. 아이구, 원통해라. 학교서그렇게 잘리고… 너 제자들이 그렇게 찾아와도, 넌 무덤에서 나올 수가 없었고… 그 좋아하던 약주 한잔 못마시고… 꽃피고, 꽃지고, 한해 두해 가건마는, 이 어미는 너 보고싶어, 불쌍한 시우가 눈에 잡혀 눈물로 눈 멀고… 사시장철 여기 앉아 아우라지 바라보며, 서러운 한 세상 네 남매 새겨보며…"할머니의 넋두리가 끝없이 이어진다. 나는 어떻게 할머니를 말릴 수가 없다. 나도 속울음 울며 할머니를 내려다본다.
"마두, 너 아버지가 선생이었지?"
짱구가 묻는다. 그는 가위질을 계속한다.
"응, 선생. 읍내 중학교 선생님. 아버진 학교에서 잘렸어. 데모를 했거던"
"왜 여지껏 그 말을 하지 않았어"
"그 말을 하지 않았어. 아무도 그 말을 묻지 않았어"
할머니도 아버지가 잘렸다고 말했다. 종시시 시장통 데모에 경주씨도 있었다. 경주씨도 복지원에서 잘렸다. 경주씨는 나를 아우라지로 데려다주겠다고말했다. 경주씨는 오지 않았다.
"어머니는요? 여동생이 있다고 했잖았어요?"
순옥이가 내게 묻는다.
"아버지가 잘리고, 집을 나갔어. 엄마가 시애를 데리고. 어디 있는지, 난몰라. 어디 있겠지. 나중에 아우라지로 올거야. 나도 왔어, 아우라지로"나는 손등으로 눈물을훔친다. 아랫쪽에서 인기척이 난다. 한서방과 춘길이가 올라온다. 한서방은 장갑을 꼈고 낫을 들었다. 춘길형은 망태기를 들고있다.
"손님이 벌초를 하시구먼요"
한서방이 짱구에게 말한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