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야, 저기 섰잖니"할머니가 손가락질한다. 한 켠에 후박나무 한그루가 서 있다. 넓은 잎을펴서 우산꼴이다. 할머니가 풀썩 무릎을 꿇는다. 내가 할머니를 일으켜 세운다. 나는 할머니의 허리를 잡고 풀숲길을 오른다. 내 왼쪽 다리가 결린다.나는 조금 절뚝거린다.
"올해는 윤팔월이 들어 아직 나뭇잎이 저리도 푸르구나. 뗏장도 시퍼렇고.너 아비가 이제서야 너를 맞는구나. 잃은 자식을 찾는구나. 이게 몇 해만인가, 저승에 집짓고 이승서 만나기가…"
할머니가 헉헉대며 엉절거린다. 아버지 묘에는비석이 없다. 후박나무가비석이다. 뗏장이 푸르다. 깎지 않은 머리카락처럼 자랐다. 할머니는 이제엉금엉금 기어 아버지 묘로 오른다. 할머니의 한쪽 고무신이 벗겨진다. 할머니는 신발이 벗겨진 것도 모른다. 나는 할머니의 고무신을 들고 뒤따른다.후박나무를 잡고 할머니가 무릎걸음을 멈춘다. 후박나무는 이제 내 키를 넘어버렸다. 집에서 옮겨 심을때는 허리에 차던 어린 나무였다. 몸체가 팔목보다 가늘었다. 이제는 밑동이 내 팔뚝만하다. 곧게 자라 가지를 넓게 벌렸다.호박잎만한 잎들을 달고 있다. 무덤 가까이 오른쪽에 내 나무가 있다. 진달래나무도 내 허리만큼 자랐다. 가지가 많이 생겨났다. 튼실하게 뿌리를 내렸다. 국시집 옥상 화단의 철쭉과는 비교가 안된다. 할머니꽃은 없다. 이른 봄이면 허리 숙여 필 터이다.
"아버지 나무라며 너가 이 후박나무를 심고, 그해 여름 집을 나갔지. 고물장사를 따라서. 그놈이 순진한 널 홀렸어. 장에 나간 날 만나게 해준다고 속여선. 장사공이 그 말을 전해줬지. 불쌍한 새끼, 아우라지 밖으로 영문도 모른채 따라 나서선…"
기어코 할머니가 울음을 터뜨린다. 체머리를 떨며 어깨를 들먹인다. 두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손가락 사이로 눈물이 흐른다. 나는 할머니를 부르며나룻배를 탔다. 여량에서 버스를 탔다. 고물장사가 내 손을 놓지 않았다.짱구는 돌아서 있다. 울을 친 소나무를 본다. 가지에 다래 덩굴이 길게 늘어져 있다. 다래 열매가 붉게 익어가고 있다. 짱구가 얼굴을 돌린다. 측은한눈길로 할머니를 내려다 본다.
"가위 이리 줘. 내가 해볼께"
짱구가 말한다. 점퍼를 벗어제친다.
"내가 해볼께"
내가 나선다. 봉분의 잔디를 가위질한다. 가위가 잘 든다. 아버지의 머리카락이 싹둑싹둑 잘려나간다. 순옥이가 쪼그려 앉아 내 가위질을 본다. 무릎에 턱을 괴고 있다. 쓸쓸한 얼굴이다. 채리누나의 얼굴이 늘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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