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론(신현식·계명대교수 법학)--'5·18'청산과 상식

입력 1995-10-06 08:00:00

우리속담에 '잘되면 자기 탓이요 잘못되면 조상탓'이란 말이 있다. 남의탓하기를 좋아한다는 꾸지람이기도 하지만 뒤집어보면 잘못된 현실이 과거의잘못에 기인한 면이 많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는 의미도 있다.**불행했던 백년정치사실제 지난 백년간의 불행했던 우리 정치사를 보더라도 권력자의 잘못으로백성들은 끝없는 고난을 당해왔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나라를 팔아먹고도해방후 지금까지 대대손손 잘먹고 잘사는데 목숨까지 바쳐가며 나라와 국민을 위해 헌신해 온 사람들은 여전히 고생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것은 곧 한번도 이땅에 정의가 바로 세워지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분명 조상탓이라 할 만하다.

해방후 친일파들을 처단하기 위한 반민특위가 이승만정권에 의해 와해되었고 4·19혁명을 통해 바로 잡으려던 민족정기는 5·16군사쿠데타에 의해 또다시 무산되었다. 오랜 군사독재를 청산할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게 했던 80년의 봄을 무자비한 군화발로 짓밟고서 수많은 양민들을 학살했던 신군부의만행은 십수년이 지나도록 진상조차 밝힐 수 없었다. 군사독재의 시대가 가고 문민정부의 출범을 축하하던 모든 국민들의 기대와 희망은 그들에게 법의심판을 내리는 것이었지만 그 또한 실망스러울 뿐이었다.

그러나 이번만은 그런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게 하겠다는 결의들이 지금 5·18책임자들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처분을 철회할 것과 공소시효를 배제하고특별검사제를 도입하기 위한 특별법을 제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5천여명의 교수들을 비롯하여 종교인, 학생, 시민등 60여만명이 서명하는등 엄청난 국민적 호응으로 국회에서도 최대의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특별법'제정 최대현안

명백한 학살행위에 대해 '성공한 쿠데타'라거나 '공소시효의 제약'이라는논리로 회피하는 것은 법적으로도 용납될 수 없으며, 범죄행위가 있었다면검찰은 마땅히 기소를 하여야 하고 처벌에 관한 최종적인 판단은 사법부가하는 것이 권력분립의 원칙이다. 범죄행위에 대해 수사하고 처벌하기 위한공소권을 부여받은 유일한 기관인 검찰이 그 본연의 임무를 저버린다면, 그에 대한 강제수단은 국회가 특별법을 만들거나 헌법재판소가 판결로 불기소처분의 위헌을 확인하는 것이다.헌법재판소의 판결은 국민이 강제할 수 없더라도 국회는 국민의 요구를 저버릴 수가 없고 저버려서도 안된다. 국회는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굳이 정치적 이유로 처벌하지않기를 바란다면 판결확정 후에 특별사면으로 형집행을 면제시켜 주면 된다.이러한 모든 국법질서를정부 스스로가 무시하고 국회마저 다수당의 횡포로억지를 부린다면 민심은 완전히 떠나버릴 것이다. 더구나 '역사에 맡기자'는주장은 정부 스스로가 법치국가이기를 포기하는 모순까지 안고 있는 것이다.일부에서는 '지나간 일'인데 굳이 아픈 상처를 들추어낼 필요가 있느냐고하지만 그것은 범죄행위가 명백히 확인되고 가해자가 이를 인정하여 진심으로 사죄하고 피해자가 용서해 줄때에만 가능한 '화해'의 논리다. 가해자가사죄도 없이 위증을 일삼고 여전히 권력과 금력을 휘두르고 있는 상황에서피해자들은 물론 수십만의 뜻있는 국민들이 법의 심판을 요구하고 있는데 누가 감히 덮어두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법의 심판' 바로세워야

국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개인적인 보복이 아니다. 다시는 이땅에서 권력을잡기 위해 사람들을 죽이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지난 역사속에서 독재정권의 등장과 유지를 위해서는 갈수록 더많은 사람들의 피를 필요로 했었다. 그것이 잘못이었음을 명백한법의 심판을 통해 확인하지 않고 넘어간다면 앞으로 더 많은 피를부르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이 그 일을 처리하지 않는다면 훗날 불행해진 후손들이 또다시 오늘의 이 조상들을 탓하지 않겠는가. 이것은 법논리 이전에 건전한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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