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슨사건 '미국병' 적나라하게 노출

입력 1995-10-03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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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한국시간)부터 지난 1년반동안 세상을 떠들석하게 만들었던 O·J 심슨사건 공판이 시작된다.일부 타락한 경찰관의 실체가 들어난 것도 그렇고 가정폭력의 심각성과 이혼한 부부가 겪는 갈등, 노골적인 인종차별주의 그리고 돈 있는 사람들이 사법제도를 우습게 보는 풍조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은 사건이었다.

변호인단이 이 사건을경찰조작으로 몰고가 심슨의 무죄를 주장하는데 빌미를 준 마크 퍼먼 수사관은 자타가 공인하는 백인우월주의자이다. 심지어그를 증인으로 세운 검찰조차도 퍼먼은 인종주의자로 '썩은 사과'라고 몰아세울 정도였다. 문제는 썩은 사과가 하나 둘이 아니라는데 있다.가정폭력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올해 로스앤젤레스 고등법원에 접수된가정폭력 사건은 작년보다 60%가더 많았다고 한다. 니컬 심슨의 부모가 죽은 딸을 기리기 위해 만든 가정폭력예방재단의 계몽활동도 활발하다.여느 살인사건 같으면 한두달새 재판이 끝난다. 그러나 백만장자인 심슨경우는 일년이 넘게 질질 끌었다. 수십명씩 변호인을 사서 사사로운 일까지일일이 따지다 보니 부지세월이었다.

애꿎게 시민이 낸 세금 1천7백20만달러가 재판 비용으로 축났다. 그 내역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가 쓴 일반비용 8백30만달러외에 검찰측 증거수집비3백60만달러, 심슨 수감과 신변보호 비용 2백70만달러, 배심원 호텔투숙비 2백60만달러 그리고 검시관 시체해부비용 9만9천달러 등이다.물론 심슨도 1천만달러 가까운돈을 쓴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는 유치장에갇혀 있으면서도 책을 써서 큰 돈을 벌었고 기타 기념품 제작 상표권으로 받은 돈과 앞으로 받게될 사례금 만도 몇백만 달러라니 지출보다는 수입이 더많을것 같다.

금전상 가장 손해를 많이 본 경우는 뭐니뭐니해도 미국 공공기관과 기업체들이라고 한다. 직원들이나 종업원들이 심슨사건을 화제로 일손을 놓고 재잘거리거나 컴퓨터 통신으로 의견을 주고받는 재미로 시간을 낭비하는 통에 생산성이 현저히 떨어져 모두 4천억달러 손실을 봤다는 통계도 있다.그러나 가장 큰 관심사는 이 사건으로 불거져 나온 인종문제였다. 우선 이사건을 보는 눈이 백인과 흑인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거듭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대부분 백인들이 심슨을 살인범으로 단정하고 있는 반면 대부분의흑인들은 경찰조작 덫에 심슨이 걸려든 것으로 그의 무죄를 믿고 있다.같은 사건을 두고 백인과 흑인이 정반대로 갈려 있는 것은 인종문제를 놓고 백인과 흑인이 각각 다른 두개의 잣대로 재고 있기 때문이다. 백인은 법에따라 잘잘못을 가린다는 일반적 기준에 따르지만 흑인은 역사적인 사실과경험을 토대로 삼고 있다. 법은 있지만 으레 보호대상에서 제외된것이 흑인이었다는 쓰라린 과거의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한인들은 이번에도 또 흑인들이 들고 일어나지 않을까 다들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유죄, 무죄, 재판무효 그 어떤 평결이 나도 흑인들이 항의나 축하데모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4·29폭동에 멍든 가슴들이라 어찌할 수없다.비록 열두명의 배심원이 명쾌한 평결을 내려 일단 공판은 끝난다해도 사건이 종결된다고 볼 수 없다. 인종차별이 있는한 두고 두고 이 문제로 미국사회가 속앓이를 할것이고 그때마다 또 다시 도마위에 오르게 될터이니까.〈LA·이석열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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