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엄마 일기-빛바랜 통지표

입력 1995-09-11 08:00:00

지난 광복절, 텔레비전으로 50주년 기념행사를 보고 있다가 벌떡 자리에서일어나 장롱안에 고이 간직된 한장의 통지표를 꺼내들었다. 1945년이라고 적혀있는, 내가 국민학교 1학년때의 통지표이다. 해방과 동갑이니 올해 꼭 50년이 된 통지표.손바닥 하나 펼쳐놓은 크기에 앞면의 글씨가 뒷면에서도 내비치는 얇은 종이, 누렇게 찌들어 보잘것없는 종이쪽지에 불과하지만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받았던 통지표인지라 내게는 더없이 소중한 것이기도 하다.'수'보다는 '우'가 많았던그 시절의 통지표들을 지금도 나는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다. 심심할때면 그것들을 꺼내보곤 한다. 한사람 한사람 이름을 부르며 통지표를 나누어주시던 그옛날 선생님들의 그리운 얼굴을 떠올려보면서 추억에 잠기기도 한다. 시집오던 날 친정아버지께서 "통지표 챙겼나?" 하시던 다정한 말씀이 지금도 아련히 귓가에 들려오는것 같다.6.25를 겪고 이후 시집을 오면서까지 통지표를 신주모시듯 소중히 간직해온 것은 나의 어린시절을 내 자식들에게 있는그대로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언젠가 아이들에게 통지표를 고스란히 보여준 적이 있었다. 석차가 또렷이나와있는 통지표를 보며아이들은 "엄마도 대학만 나왔더라면 군수 한자리쯤은 했겠네"하며 놀려댔다.

비록 빛바래고 낡은 하잘것없는 통지표이지만 광복의 연륜과 함께 묵어간다는걸 자부심으로 하여 훗날 자식들에게 물려주리라. 이 엄마에겐 보물 제1호라고 하면서….

(대구시 수성구 만촌3동 우방금탑아파트 11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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