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염원 반세기에 서서...

입력 1995-08-15 00:00:00

▲김영호=올해는 해방 50주년이자 민족분단 50주년, 그리고 일본과 관계를맺어 30년(65년 한일협정)이라는역사적 시점을 갖고 있습니다. 50년이라면반세기이고 역사의 한 매듭을 짓는 새로운 전환기라는 의미를 가지게되는 만큼 이번 광복절에 즈음해 지나간 50년을 정리하고 다가오는 21세기를 준비하는 자세를 가다듬어 보는 국민 각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김원일=스스로의 힘에 의해서가 아닌 미국과 소련등 외세에 의해 해방이이루어지다보니 냉전 이데올로기의 틈바구니에서 지난 50년간 분단시대를 살아야했습니다. 그렇게 보면 해방당시보다 경제적 성장수치만 괄목할만한 발전을 했을뿐 별로 이루어진것도 없는것 같습니다. 이제서야 일제당시 총독부건물 철거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좀더 일찍 나올수도 있었는데…일제잔재속에서 너무 각성없이 살아온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가 이루어낸 경제적 물량을바탕으로해서 앞으로의 반세기는 민족통일에 온 역량을 쏟아 부어야겠습니다.▲김관봉=일제잔재를 청산하지 못했다는 말씀에 동감합니다. 그러나 너무외형적인 청산에 치우치지않았나하는 느낌이 들때가 있어요. 총독부건물 철거같은 조치도 중요하지만 나라를 좀 더 굳건하게 경쟁력있는 국가로 만드는것이 더 중요한 과제라고 봅니다. 분단이후 남북간의 체제경쟁등 무모한 소모적 경쟁의 와중에서 개발독재시대에 이르렀고 이제 좀 살게되었나 싶지만고도성장등 양적성장,외형위주의 실적주의에 따른 적폐로 나라 전체가 '졸속'국가처럼 보이지않습니까. 삼풍백화점사고가 그렇고 대구도시가스폭발사고도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삶에 대한 가치문제를 너무 도외시해 왔어요. 외형이 아닌내용과 질에 치우치는 국가로 이제 나아가야합니다.▲김영호=두분께서는 어두운 측면을 부각시켜 말씀하신듯한데 저는 좀 밝은 측면에서 우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의 그간 고비고비를 아리랑열두고개에다 비유한다면 7~8고개쯤은 넘어온것이 아닌가 싶어요. 암울했던일제의 어두운고개를 지나 미군정고개를 넘어 6.25상잔,그뒤 보릿고개를 넘고 군사독재 고비를 넘어서…. 아무튼 이제는 상당히 산업화도 됐고 민주화도 상당히 진행된 것아닙니까. 금년에 국민소득 1만달러도 달성하고 유엔비상임이사국에도 내년에 들어간다하고 또 OECD가입도 내년쯤 확실한 것 같고.물론 아직도 통일문제라는 최대의 민족염원은 여전히 답보상태인데다 일본에의 기술종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있는가 하면 동북아 환경문제도 만만찮은등 어두운 측면도 많습니다만 어떻든 역사의 다음 고개를 어떻게 준비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김원일=일제잔재 청산문제가대두되고 있습니다만 이승만전대통령이 일제하에서 친일한 사람들을 대거 등용한것이 큰 실책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때문에 정의롭지못한 정치행태가 관행처럼 이어졌고 5.17광주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보게 됩니다. 뻔뻔스러움이 통하는 사회가 되어버린것이지요. 정신대,원폭피해자보상문제등도 왜 문민정부가 들어서서야 부각됩니까. 65년 한일협정 당시 선명한정권이었다면 그때 규명되고 보상되었어야하는 문제 아닙니까. 좀 더 뼈아픈 우리의 자성이 있어야합니다.

▲김관봉=우리의 아이들도 의식의 전환이 있어야합니다. 일본만 탓할 것이아니라 우리민족의 잘못된 길에 대한 반성도 뒤따라야합니다. 반일만 교육시켜서 되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그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하자는 교육이병행되어야 합니다. 과거에만 매달려서는 안됩니다. 결국 우리의 국력이 더강해지지않으면 일본은 반성하지 않습니다. 국제정치에서는 국가의 파워가가장 현실적 무기입니다.

▲김영호=2차대전이후 반공을 추구하는미국정책과 관련돼 일본을 동아시아의 맹주로 내세우는 체제속에 편입되고 이같은 양상이 전개되는 가운데 일본이 과거 잘못을 시인하지않고 지금까지 내려온측면도 있습니다. 그래서전후 독일과 비교해 일본을 비판하고 또 미국에 대한 비판도 있을 수 있지만궁극적으로 우리문제는 우리가 해결해야 합니다. 지난 50년간 우리가 제대로일제청산등 민족정기를 바로잡지 못한 이유는 민족지도자 혹은 정치지도자들의 권력투쟁과정도 한몫 했다고 봅니다. 이승만과 김구가 손을 잡지 못한 것도 그렇고 목하진행중인 민주화도 민주세력이 제대로 손을 못잡고 제3의 세력을 끌어들이다 보니 목표도 잊어버리고 민주화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으로 봐요. 각 개인이 훌륭해도 권력투쟁속에서 갈바를 제대로 가지 못하는이런 구조를 어떻게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갈 것인가가 중요한 화두가 되고있습니다.

▲김원일=우리가 외세에 의한 해방,그리고 민족분단으로 이어졌지만 만약우리가 스스로일제를 물리쳤다고하더라도 만주에서의 독립운동가중 사회주의 세력이 상당했던 점을 볼때 결국 상호 투쟁이 있었을 것이고 6.25전쟁과버금한 사건이 있었을것 같습니다. 통일이 우리 민족 최대의 과제입니다만정치적,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놓지 않으려는 권력자들의 욕망과 국민과의괴리가 있기에 쉽사리 문이 열리지않는 것 아닙니까.

▲김관봉=냉전체제가 종식됨에 따라 강대국간 과거와 같은 갈등은 당분간없을것 같습니다. 그러나 냉전시대엔 강대국들이 세계질서를 나름대로 관리해왔지만 지금은 그같은관리능력상실로 도처에 지역갈등이 일고 있습니다.이점에서 한반도도 예외가 아닙니다. 북한도 과거의 가장 큰 의지가 되었던소련등 종주국이 사라지니까 체제도 약화될대로 약화됐고 행동도 거칠어지고있습니다. 체제유지를 위해 핵무기등 신무기개발에 매달리고 있는것도 같은맥락입니다. 이점이 잘 매듭되느냐의 여부가 한반도 안정의 갈림길로 보여집니다. 국제정치에서 국력이란 기존 군사력중시에서 과학기술에 힘입은경제력으로 대체되고있습니다. 이와 맞물려 WTO체제대두,지역공동체현상등이 두드러지고도 있고요. 앞으로우리의 국제적 위상은 경쟁력있는 구조를여하히 갖추느냐에 달려있습니다. 통일문제도 우리 스스로의 내부역량을 배양하는데 그 해답이 있다고 봅니다.

▲김원일=개인적으로는 독일통일에서 시사받듯 우리의 통일 여건은 거의갖추어졌다고 봅니다. 북한의 고립 심화,경제력에 따른 남-북소득격차등금세기내 통일될수있는 환경은 조성되었다고 봅니다. 냉전체제종식등 국제적여건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내적인 무엇이 있어야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부의 계층간 갈등이 여전히 첨예하게 상존하고 있으며 문화적 측면에서 본다면 도서관,공연장등의 시설은 얼마나 빈약합니까. 또 경제력은 선진국수준에 올라섰다고 합니다만 사회복지분야는 중진국 수준에도 못미치고 있습니다. 내적역량을 갖추는것이 국제경쟁력과도 직결될것입니다.▲김영호=한반도의 국제적 환경이란 측면에서 본다면 불안하다는 느낌이듭니다. 남북한이 미,일,중,러시아등 4강과 2대1로 접촉하는 양상으로 전개되고있는상황에서 한국입장이 미묘하게 꼬이고 있습니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한국이 미국의 입김에 가장 많이 영향을 받고 있다고 느끼고 있고 따라서 동아시아국가를 선택하든지 미국을 택하든지 양단간 결정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아시아국가이면서 유일하게 비아시아적으로 고립되는 듯한 국제적조건이 마음에 걸려요.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미-일-중의 삼각경쟁틀속에서 한국이 제대로 위상을 찾지못하는 것도 같고. 어떻게 이같은구조에서 벗어나한국에 유리한 틀을 만들수 있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해야할것 같습니다.▲김관봉=이들 국가들이 종전마냥 '두개의 한국'(Two Korea)정책으로 우리를'갖고논다'는 우려로 들립니다만 독일 통일 과정을 보면 서독이 동독과비교안될 정도로 강대해지자 소련이 오히려 동독을 보호하기 위해 '조약'을맺자는 식으로 나옵니다. 우리도 우리의 역량이 커지면 중국이나 러시아가북한문제를 상의해 올것이 분명하고 결국 통일을 '관리'해 나갈수도 있다고 봅니다. 중국과 러시아가 아직도 북한에 미련을 갖고 있지만 역시 무게의축은 우리에게로 기울어졌다고 봅니다.

▲김원일=동감입니다. 그러나 국제무대에서 우리 현재의 국력에 걸맞는 주체성있는 외교가 이루어지지못하고 있는것 같아요. 핵문제도 미국과 북한눈치 보아가며 우왕좌왕하는가 하면 대북쌀지원문제도 외국에서 쌀을 사서지원하겠다는 즉흥적 발언도 나오고요. 이런 식으로 주체성을 갖지못하고 대처함으로써 북한의 일관된 고집에 말려드는 느낌이어요. 우리 정부가 좀더잘해야하는데 물가에 내놓은 아이마냥 불안합니다.

▲김원일=미국의 국익을 우선한다는 전제아래 회담은 늘 북.미간 이뤄지고한국측은 이에 대해 사후보고를 받는 형식을 보여왔습니다. 남북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우선 북한이 가능한한 빨리 대외 개방토록 유도하고 이를통해 경제력도 신장되도록 이끌어야죠.

▲김영호=북한이 잘 살아야 통일 문제 협상에 자신있게 나올 수있다고 봐요. 잘 살려면 우선 북한내 경제특구가 한국 등의 투자를 통해 활성화돼야하는데,북측은 이것이 오히려 체제 위협으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지요. 때문에 북측이 사회주의를 유지하더라도 시장 경제를 도입할 수 있느냐여부가 초점이 되는 셈이죠. 평양 당국에 자본주의를 도입하더라도 체제 붕괴로 이어지지않는다는 확신을 심어 줄 필요가 있습니다.

▲김관봉=중국 등 사회주의권이 경제적으로 점차 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북한만이 '풍요의 바다속에 떠있는 빈곤의 고도'같습니다. 그러나 김정일 체제로는 당장 대외개방으로 나가기가 힘들 것으로 봅니다. 물론 장기적으론 불가피하겠죠. 북측의 대외개방과 관련, 한국 정부가 대북정책을 일관되게 유지해오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장애물이 돼 왔습니다. 게다가 남북문제를 보는 미국측 시각도 시시각각 변해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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