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엄마일기-밭갈기와 책읽기

입력 1995-08-14 08:00:00

날씨가 몹시 후덥지근한 일요일 오후. 간간이 내리는 비때문에 집안에만갇혀 있던 꼬마 둘은 갑갑해서인지 툭하면 말다툼을 벌이거나 아내와 나를괴롭혔다.하는 수 없이 교외로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나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우산을 받쳐들고 거닐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내심 놀랐다. 우리 소시민들의 일상저변에 깔려있는 삶의 방식 한가지-날이 더우면 창을 열거나 밖으로 나오는즉,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우리가 찾은 곳은 대구근교의 산자락에 고즈넉이 자리잡은 시골국민학교였다. 운동장가의 아름드리 나무들로 학교의 역사를 가늠해보면서 거닐던중 운동장 한켠에 넉넉한 폼으로 자리잡고 있는 비(비) 하나를 찾아냈다. 거기 쓰여져 있는 글자 넉자가 내가슴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청경우독(청경우독)' '날이 맑으면밭을 갈고 비가 오면 책을 읽는다'라는 뜻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가난하지만 마음의 여유가 있는 어느 선비의 삶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것 같았다. 그 비는 또한 남보다 빨리앞서가려 버둥거려온 나에게 뒤도 돌아보면서 살아가라고 훈계라도 하는 것같았다.

아닌게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빨리 달려온만큼 잃어버린것도 많다. 마치 자동차를 빨리 몰면 주변풍경을 못보는 경우와 같은 이치이리라. 경제발전과 문화수준 향상이 우리가 얻는 것이라면 미풍양속의 사라짐, 심각한 환경오염, 대형사고의 발생 등은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들이다.

청경우독이라는 네글자의 의미는 물질적 풍요로 행복이 거짓 포장돼 있는우리의 삶이 결코 질높은 것만도 아니라는 사실을 되돌아보게 해주었다.(대구시 북구 복현동 주공아파트 402동3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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