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50 새지평열자

입력 1995-08-09 12:04:00

광복 50년을 숨가쁘게 달려온 한국 경제의 성과는 눈부시다.일제의 침탈과 6·25전쟁의 후유증으로 세계 최빈국이던 나라가 국민총생산(GNP) 세계 11위,교역규모 12위의 선발 개도국으로 부상했다.광복과 6·25전쟁 전후의 한국경제는 산업생산시설이 전무한 사실상의 '무경제'상태였다.46년 한해동안 58만8천켤레의 운동화가 생산됐고 고무신은 2백79만2천켤레,자동차 타이어는 7천8백개가 만들어졌다.

46년7월부터 1년반동안의 공산품 공급량은 양말이 1인당 한켤레,운동화는25명당 한켤레,남녀및 아동용 고무신은 8명당 한켤레,화장및 세탁용 비누는3명당 한개꼴.

18개월동안 고무신 한켤레를 8명이 나누어 신어야했고 비누 한개를 3명이18개월동안 나눠써야 하는 형편이었다.

45년 당시 남한의 승용차는 총 1천3백11대. 화물차를 포함한 전체 자동차등록대수는 7천3백26대지만 이중 절반은 폐차와 다름없었다.45년의 산업구조를 보면 농업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으나 2백6만5천호의 농가중 소작농이 67%나 됐다.

수출은 48년의 경우 총 1천4백39만달러어치를 수출했다.

그나마 마른 오징어가 38·4%,김이 14·6%를 차지해 이 두 품목의 수출비중이 53%나 됐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꼽히던 한국은 62년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기점으로 본격적인 개발단계에 들어섰다.

정치적 혼란과 오일쇼크,노사분규,부동산가격 폭등등으로 인해 경제 기반이 뒤흔들리는 일도 있었지만 결국 '한강의 기적'을 일궈내고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시대를 눈앞에 두게됐다.

94년말 기준,수출 9백60억1천3백만달러로 48년보다 6천8백57배 늘었고 승용차 대수는 5백14만8천7백대로 45년에 비해 3천9백60배나 증가했다.인구는 올해 7월1일 기준 4천4백85만1천명으로 추계돼 광복 당시의 남한인구 1천6백87만명에 비해 2·7배다.

광복 50년의 한국경제를 되새기면서 한·일 경제교류를 빠트릴수없다.심각한 무역 불균형때문에 밝은 면보다 어두운 면이 훨씬 많은 한·일 경제교류는 65년 12월17일 발효된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본격적인 막이 올랐다.

일제의 침탈에 따른 희생을 금전으로 환산,보상을 받는데 대한 논란과 반발이 상당했지만 인접한일본과 국교없이 지낼수없고 또 국교정상화를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보상문제가 해결돼야한다는 현실론에 밀려 협정이 이루어졌다.

청구권 자금은 일제에 뺏긴 재산과 생명에 대한 보상으로 무상 3억달러,유상 2억달러등 총 5억달러.

66년부터 75년까지 10년간 도입된 이 자금은 제2차및 3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추진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포항종합제철을 건설하는데 든 외자의 29·1%(1억1천9백만달러)가 청구권자금으로 충당됐고 소양강댐 건설에 소요된 외자(2천1백만달러)는 전액이 이자금으로 조달됐다.

경부고속도로에도 이 돈이 6백89만달러 들어가있다.

그러나 청구권 자금을 주축으로 해서 시작된 한·일 경제협력은 한국 공업화의 발판이 되었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심각한 무역 불균형을 초래했다는 부정적인 측면도 강하다.

구미보다 가까운 거리와 문화적 유사성으로 인해 경제 개발에 필요한 자본과 기술, 기계, 원료를 일본에 크게 의존해 추진되다보니 한국경제가 발전하고 수출이 늘면늘수록 일본으로부터의 수입도 그만큼 증가하는 경제구조가굳어지게됐다.

지난해 우리 경제의 무역적자는 총 60억달러. 일본과의 무역에서만 1백14억4천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한·일 국교정상화때부터 광복 50년을 맞은 올해 5월까지 누적된 대일무역적자는 무려 1천11억8천만달러에 이른다.

이때문에 한국과 일본의 경제교류 문제를 일부 경제학자들은 '가마우지 낚시'에 빗대 설명한다.

낚시꾼은 별다른 미끼나 낚시도구가 필요없고 가마우지 한마리와 긴 줄만있으면 된다. 가마우지의 가늘고 긴 목에 줄을 매단뒤 물에 풀어놓으면 가마우지는 물속에 잠수해 부리로 고기를 문다. 이때 줄을 잡아당기면 가마우지는 물고기를 삼키지못하고 문채로 낚시꾼에게 가져오게된다.물론 가마우지는 한국,낚시꾼은 일본이다. 한국이 열심히 완제품을 만들어외화를 벌어들이면 일본은 한국의 완제품생산에 필요한 기술 이전과 생산설비·원자재 수출로 외화획득액의 상당부분을 흡수해간다는 이야기다.정부도 대일무역수지 개선이 절박한 문제임을 인식하고있다.근본적으로 대일수지를 개선하지 않는한,또 기계·부품류 수입을 줄이지않고서는 적자를 면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인식아래 기계·부품류 산업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대일의존도를 낮추겠다는 의지를 최근 보이고있다.그러나 정부의 의지도중요하지만 경쟁력을 높이고 산업구조 조정을 통해대일예속적인 하청구조를 벗어나려는 업계 스스로의 노력도 시급하다.섬유류및 의류를 만들어 수출하기위해 섬유기계와 중간섬유사 직물등을 일본으로부터 수입하고,마지막 봉제과정에서 부가가치를 챙기는 산업구조로는산업체질 강화는 물론 대일 역조개선을 기대할 수 없다.

정부는 최근 2010년 국내 총생산(GDP)규모 2조1천1백40억달러를 목표로 하는 신경제 장기구상을 내놨다.

2010년에는 캐나다,브라질,스페인,영국을 추월해 서방 선진7개국(G7)의 반열에 올라서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무역기구(WTO)로 대표되는 경제전쟁이 시작된데다 남북간 대치상황,사회간접시설의 태부족등 넘어야할 암초도 겹겹이 도사리고있어 앞날이순탄치만은 않다.

특히 한·일 경제관계의 새로운 정립은 반드시 그리고 시급히 풀어야할 과제다.

우리 경제가 수평적 분업과 상호보완·경쟁의 관계로 탈바꿈하지못하고 일본경제에 지금처럼 종속되어 있는한 G7의 꿈은 요원하다.

일본에 당당히 내다팔수있는 고품질의 경쟁력있는 상품과 부품·기계류를자체 생산할수있는 기술축적, 이는 광복 50주년을 맞아 한·일 경제협력의새 지평을 열고 다가올 21세기에 대비해야하는 우리 경제의 절실한 과제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