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검찰의 딜레마

입력 1995-08-08 08:00:00

검찰이 매우 난감하게 됐다. 전직 대통령의 4천억원 가·차명 계좌 보유설을 터트린 서석재전총무처장관의 발언에 대한 진상조사를 떠맡은 것이다. 서장관의 얘기는 취중에 시중의 루머일뿐 어떤 수사의 단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검찰이 손댈수 있겠느냐며 '4천억설'에 결코 말려들지 않으려고안간힘을 써왔다. 그러나 검찰총장을 지휘감독하는 법무장관이 조사지시를내린 것이다.검찰은 '범죄혐의를 조사하는 수사기관이지 진상을 조사해서 해명하는 곳이 아니다'고 4천억설 조사를 강력하게 부인해왔지만 이제 내키지 않은 일을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 됐다. 검찰이 이번 일만은 한사코 피해 가려고 안간힘을 쓴 것은사안자체가 검찰이 가장 거북스럽게 생각하는 정치자금문제인데다가 전직 대통령이 개입된 것으로 잘못 처리할 경우 정치권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전반에 엄청난 파문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벌써 4천억설의 파문은 우리사회에 큰 충격을 던져주고 있는데 이른바 '공신력 있는 국가기관'으로 지명돼 이번 사태의 진상을 밝혀야 하는 검찰로선엄청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검찰은 지금 '12·12사건'에 이어 '5·18사건'의 피의자들을 불기소처분한 이래 관련사건의 피해자들을 비롯한 곳곳으로부터 엄청난 질책과 비난을 받고 있는 형편이다. 앞으로 4천억설의 조사결과가시원치 않을 경우 검찰의 입장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동안 현정부의 사정과정에서 검찰은 정치자금관련 부분에 대해서도 여러번 부딪혔으나 그때마다 수사내용은 발표된 적이 없었다. 지금 떠돌고 있는이른바 '함승희파일'도 동화은행장 비리수사때 노출된 정치자금관련 수사자료인데 공개되지않아 갖가지 루머만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밖에도 크고작은 정치권의 비리는 일정한 수준에서 수사가 중단됐던 것이 부인할수 없는우리의 현실이었다.

적지않은 사람들이 벌써부터 이번 사태의 진상조사도 서장관을 불러 발언내용을 알아보는 선에서 끝날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검찰에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권이 개입돼 있는 사건에 대해선 서슬푸런 검찰의 칼도 무디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더욱이 이번엔 억지로 떠맡은 일이기도 해 국민들이 기대하는 시원한 조사결과가 나오겠느냐는 것이 지배적인 여론인것 같다.

이같은 검찰에 대한 부정적인 기대를 긍정적인 결과로 만들어내는 것이 검찰의 이번 과업이다. 조그만 상처를 어설프게 건드려 감당못할 큰 상처로 만드는 결과가 되지 않길 바란다. 무척 부담스러운 일을 떠맡았지만 제대로 조사만 한다면 이번 사태를 계기로 검찰의 신뢰회복과 검찰독립권을 확고하게하는 바탕을 마련할수 있다. 법집행과 국민감정사이의 엄청난 괴리를 극복해야 하는 검찰의 과업에 날카로운 시선들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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