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원폭투하가 6일로 만 50주년을 맞는다. 원폭투하는 50년전 2차대전을 종전으로 이끌었지만 50년이 지난 오늘은 원폭투하의 정당성을 둘러싼논전의 출발점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당시 원폭투하는 미국이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주장하는 이른바 수정주의 학파의 선봉장인 역사학자 가르 알페로비츠씨가 최근 미국에서 '원폭사용 결정'이란 제목의 방대한 저서를 출간한 것. 이에대해 최근 미국에서는 참전용사 단체를 비롯, 트루먼 전대통령의 주장에 동조하는 소위전통주의자의 반박이 거세지고 있다.
알페로비츠씨는 일찍이 지난 65년 '원폭정책, 히로시마 그리고 포츠담'이란 책을 내놓아 히로시마 원폭투하 동기를 둘러싼 논쟁에 불을 붙인 장본인.그는 그후 30년 동안의 연구 끝에 이번 원폭투하 50주년을 맞아 8백47쪽 분량의 새 저서를 출간, 본격적인 '원폭논쟁'에 불을 당겼다.알페로비츠씨가 주장하는 요지는 당시 트루먼대통령은 히로시마 원폭투하를 결정하기 전에 일본이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되찾으려는 시도를 하고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 그러나 소련의 참전으로 종전 이후 소련의 영향력이 커질 것을 우려한 나머지 전쟁후세계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의도로원폭을 사용하게 됐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히로시마 원폭투하는 불필요한 것이었으며, 이로써 무고한 수십만명의 민간인의 목숨을 앗아갔다며 원폭투하의 부도덕성을 공격한다.
이 책속에서 알페로비츠씨는 트루먼대통령의 일기와 비밀해제된 국무부 기밀문서의 분석을 바탕으로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되기 3일전 트루먼대통령과 그의 보좌관들은 일본이 평화를 원하고 있다는 점에 동의했으나 대통령은일본이 스웨덴과 같은 중립국이 아닌 러시아를 통해 항복협상을 제의해 올것을 두려워했다고 주장한다.
이에대해 전통주의자들은 당시원폭이 투하되지 않은 채 소련군이 참전해서 일본 본토에서 전투가 벌어졌다면 전투 시작 30일만에 미군 병사만 해서60만명이 전사했을 것이라며 원폭투하는 최소한의 희생으로 2차대전을 종결시킬 수 있었던 선택이라고 맞선다.
그러나 알페로비츠씨는 이같은 원폭투하 불가피론이 '트루먼정부가 정교하게 만들어낸 신화'라고 일축하고 있다.
그는 트루먼대통령의 일기 곳곳에서 일본 본토에서 전쟁이 일어났을 경우예상되는 희생자 숫자, 공격 목표의 성격등에 대한 기록이 서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하고 이것이 트루먼정부가 원폭투하의 정당성을 내세우기위한 구실을 만들어내는과정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워싱턴·공훈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