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푸른나무(181)-도전과 응징(12)

입력 1995-08-04 08:00:00

나는 다시 잠에 든다. 옅은 잠이다. 강이 흐르고 있다. 강폭이 넓고 물살이 빠르다. 나뭇잎이 물살에 떠내려간다. "물살이 얼마나 빠르냐는 나뭇잎을던져보면 알수가 있지"나룻배로 강을 건너며 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잠이 없다. 꿈도 잘 꾸지 않는다. 차 트렁크에 갇히고부터,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잔다. 꿈도 잦다. 병실에서도 그렇다. 눈만 감으면 헛것이 보인다. 헛것은 잠에 들때까지 눈앞에 어른거린다. 강이나물이다. 트렁크안에서 소갈증으로반쯤 미친 탓인지 모른다. 잠이 들어도 물은 잠을 타고 넘어온다. 그 일렁이는 물이 꿈인지 환상인지 알수없다. 그럴때, 더러 소곤거리는 말소리가 들린다. 그 말조차 꿈인지 생시인지 구별되지않는다. 눈두덩 앞으로 강물이 빠르게 흐른다. 귀에는 말소리가 들린다."글쎄 이 친구를 잘 안다니깐요…뇌성마비 후유증인지, 자폐증인지, 하여간 정상적이지 못하다는 소견서도 가지고 있어요. 정초에 우리가 장애복지원에 위탁한 적이 있으니깐요. 몇마디 꼭 확인할 말이 있어서…""마군이 자폐증이란 걸 안다면, 마군 증언이 무슨 참고가 되겠어요. 지금상태론 대답도 불가능할 뿐더러, 충격을 주면 안됩니다. 여기가 경찰 지정병원 아닙니까. 제가 소견서를 내지요. 이건 제가 할말이 아닌줄 압니다만. 가해자나 빨리 체포하세요. 그놈들은 살인범 아닙니까. 미수로 그쳤을망정. 마군에 관한 열쇠는 그자들이 쥐고 있어요.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 않고 벌써몇번쨉니까. 상태를 보라니깐요. 성한데가 한군데도 없습니다"나는 그런 말소리도 듣는다. 물살이 그 말소리도 쓸고간다. 아이스크림이녹듯, 말이 물에 녹아버린다. 말이 자취도 없이 없어져버린다. 물너울속에아버지의 얼굴이 얼비쳐 보인다. 나에게 뭐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다.나는 눈을 뜬다. 창 밖으로 어둠이 내리고 있다. 창앞에 은행나무가 서 있다. 잎 무성한 나무다. 잎사귀가 가볍게 떤다. 바람기가 있다. 그 사이로 하늘이 보인다. 노을이 아름답다. 여름철, 비온뒤에는 노을이 더욱 아름다왔다. 아우라지가온통 붉은기운에 취했다. 이상하게 아픈데가 없다. 마음이평온하다. 병원에 들고 처음있는 일이다. 지금이라도 벌떡 일어나 걸을수 있을 것 같다. 걸을 수 있다면 걸어서 아우라지로 가고 싶다. 조직과 식구를영원히 떠나고 싶다. 그세계야말로 무섭다. 몸을 움직여 본다. 움직일수가없다. 숨 죽이던 통증이 금방 성을 낸다. 몸 곳곳을 찌르고 당기고, 쑤시고,찢는다. 어깨, 옆구리, 허리, 다리, 어디 아프지 않는데가 없다. 나는 언제병원에서 나갈수 있을는지 알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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