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22 개혁이끈 선조들의 슬기-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입력 1995-07-27 00:00:00

겸재 정선이 우리의 산하(산하)를 우리 주체적 시각에서 화폭에 담아 우리산수화의 정초를 마련했다면 겸재보다 약1세기 뒤의 단원(단원) 김홍도(김홍도·1760~?)와 혜원(혜원) 신윤복(신윤복·1758~?)은 그 산천에서 살아가는백성들의 모습을 본격적으로 화폭에 담아 우리회화사에 또다른 족적을 남겼다.겸재가 중국의 화보(화보)를 모방해 그리던 당시의 화단 풍토에서 독창적인 화법으로 조선산수화의 신기원을 열었던 것처럼 단원과 혜원은 우리 풍속화의 신경지를 개척했다.

영조(영조)말년에 동년배로 태어나 다같이 도화서의 화원이었던 단원과 혜원이 살았던 시대 역시 직업화가들은 당시 중국에서 들어온 남화(남화)풍에몰두, 중국의 관념산수화를 그리는 데 안주하고 있었으며 시대에 역행하는경직된 주자학을 신봉하던 사대부 선비들 또한 여기(여기)로 매죽(매죽)이나치는 문인화(문인화)에 얽매여 백성들의 삶을 화폭에 담는 풍속화에는 관심이 없었다.

시대감각에 민감했던 단원과 혜원은 당시 실학사상과 대중문화의 큰 물결을 감지하고 백성들의 삶의 모습을 단원은 일상의 서민생활상을, 혜원은 서민의 연정(연정)을 선구적으로 화폭에 담음으로써 조선풍속화의 신기원을 이룩했다.

영조36년 보잘것 없는 만호(만호) 벼슬을 지낸 김해김씨 김진창(김진창)의증손으로 태어난 단원은 일찍부터 도화서에 입문,10대때 그 당시 태자이던정조(정조)의 초상을 그리고 20대땐 정조의 어용(어용)을 그릴 정도로 천재화가였다.

단원은 오늘날 풍속화가로 그 성가가 더 높지만 도화서의 화원이었기에 초상화, 신선도, 의궤도(의궤도) 지리도, 불화(불화)는 물론 산수 화조도등 다양한 그림을 그렸으나 특히 산수화에서는 일가를 이뤄 겸재 정선의 뒤를 이어 독자적인 경지를 펼친 진경산수화가로 평가받았다.

고(고) 국립중앙박물관장 최순우(최순우)는 단원의 산수화에 대해 "단원은북화(북화)적인 굵은 선과 소탈한 필치로 간결히 표현한 남화(남화)적인 선조를 어울러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을 높은 예술로 승화시켰다"고 격찬했다.풍속화에서 단원의 대표적인 작품은 농·공·상(농·공·상)서민을 화제로한 '풍속 화첩'(풍속화첩)의 궤도인 '평양감사도' 풍자와 해학이 곁들인 '군수순시도'(군수순시도) 나귀를 탄 중년의 선비가 시골길을 가다 꾀꼬리소리에 길을 멈추는 모습을 담은 '청앵도'(청앵도)등이 손꼽힌다.단원이 말년에 그린 '풍속화첩'에는 '서당'(서당) '무동'(무동) '나룻배''길쌈'등의 그림이 담겨 있는데 등장하는 인물이 한결같이 동그스럼한 우리백성의 얼굴이고 힘겨운 삶을 살아온 웃음과 익살을 잃지 않아 한민족의 끈질김과 소박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대작인 '평양감사도'는 대동강에서의 평양감사의 연회(연회) 모습을 담은것으로 그 웅장함과 세밀한 표현은 천재화가 단원의 역량을 보여준다.'청앵도'는 언덕길에서 갑자기 나귀를 세우는 바람에 나귀의 두 앞발은 거의 위태롭게 곤두 모아졌고 꾀꼬리를 찾는 나귀의 쫑곳한 귀와 마부의 모습은 한폭의 풍토시를 연상케 하는데 본격적인 회화작품으로 손꼽힌다.도화서 화원의 최고 목표였던 어진(어진)화가도, 화가로서는 최고의 벼슬이었던 현감벼슬까지 했던 단원이었지만 언제 죽었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는것은 변변찮은 계급으로 대접받던 당시 화가들의 비애인지도 모른다.단원이 '길쌈' '씨름' '서당'등 서민사회의 일상생활을 주제로 화폭에 담은데 비해 혜원은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면의 세계인 남녀의 사랑과애정을 그려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혜원이 즐겨 다룬 화제(화제)는 한량과 기생, 여염집 부녀자와 승려의 연정등 조선 남녀들이 지녔던 사랑의 생태인데 이는 조선왕조 5백년을 통틀어유례없는 관능미의 표현이었다.

그의 대표작은 30장으로 꾸며진 '풍속화첩'과 '미인도'로 혜원은 시랑의정취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단원의 투명하고 밝은 담채(담채)와는 달리 아름다운 채색(채색)을 즐겨 사용했다.

'풍속화첩'에는 기녀 무녀등 다양한 여인의 미태(미태)가 부각된 '검무' '선유도' '단오날' '무녀' '선술집' '꽃나들이' 등이 실려있는데 그중에서도이조에 로터시즘의 극치는 '밀회'(밀회)·농숙(농숙) '전홍'(전홍)에 있다는게 전문미술가들의 견해다.

새벽 은은한 달빛아래 두 연인이 사랑을 속삭이는 '밀회'는 엄격한 유교사회에서도 어쩔수 없었던 남녀간의 정애(정애)의 표현이며, 동구밖 후미진 곳에서 여염집 아낙네와 외간남정네가 속삭이는 '전홍'은 사치풍조와 음풍유흥(음풍유흥)을 금하는 임금의 교서가 내려질 정도로 문란했던 당시의 사회상의 반영이었다.

또 기방(기방)여인들의 호들갑을 대들보에 숨어 엿보는 '농숙'은 이조 젊은이의 숨김없는 충동을 보여줘 절로 웃음을 자아낸다.

이들 풍속화에서 혜원은 마부 뱃사공 심부름꾼등으로 여체를 훔쳐보는 국외자로 등장하는데 그가 조선여인을 얼마나 사랑하였는가는 그의 대표작의하나인 '미인도'에서 가늠해 볼 수 있다.

윤기도는 트레머리와 자주댕기, 초생달 같이 길고 가는 실눈썹, 살짝 내보인 외씨보선을 섬세하고유력한 필치로 담은 '미인도'는 조선여인의 요염과아름다움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미술사가 김승환씨(김승환)는 "조선 왕조 청춘남녀들의 사랑과 멋의 실상을 오늘날에 이 만큼이나마 전할 수 있었던 것은 숨겨야만이 미덕으로 인식되던 조선인의 정열을 과감히 표출해냈던 혜원의 용기덕택"이라고 설명하고혜원을 단원과 함께 당시의 관습에 도전 새로운 경지를 이룬 조선후기의 전위적 실험작가였다고 평했다.

도화서의 화원이었던 고령신씨신한평(신한평)의 아들이었던 혜원은 단원김홍도, 김득신(김득신)등 당시 도화서의 주류들에 가려 생전에는 빛을 보지못했으며 이때문인지 생몰연대등 그에 대한 기록은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최종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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