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삭풍회 회장 인터뷰

입력 1995-07-26 22:09:00

'시베리아 삭풍회'는 일제시 관동군으로 강제 징병 또는 군속으로 끌려갔다 광복후 소련군에 포로병으로 잡혔다 풀려난 한국인 생존자들의 친목 모임이다.삭풍회는 지난 91년말 7명의 회원으로 발기. 신문광고등을 통해 회원 발굴작업을 편 끝에현재 45명으로 불어났다. 이 회가 설립된 궁극적인 목적은일본정부에 대해 피해보상청구로 그 희생을 되돌려 받으려는 것이다.현재 삭풍회는 3천여명의 원래 징병인원중 45명의 명단(러시아 정부로 부터 포로병의 신원확인서 증명)뿐으로 일본을 상대로 피해보상 청구를 신청중에 있다. 다음은 김일용회장(71)과의 일문일답 내용.

-'시베리아 삭풍회'에 대한 설명부터 한다면.

▲삭풍회는 1945년 해방을 전후해 소련군에 포로병으로 잡혔다가 1948년풀려난 일본 관동군 소속의 강제징집됐던 한국인들의 모임이다. 당시 약2천8백여명이 석방돼 나홋카를 거쳐 북한으로 갔다가 약4백50명은 도보로 38선을넘어 남한으로 간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간의 활동 사항은.

▲우리는 삭풍회가 발족하고나서 여러차례 서울주재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반응도 없고, 우리 정부나 언론에서조차모르는척 했다. 단지 일본 북해도 신문사에서 깊은 관심을 갖고 이를 보도하는등 현재까지 가장 큰 협조를 받고 있다.

-한국 정부로부터 도움이 없는지.

▲그간 청와대나 외무부에 진정서를 보냈으나 대답은 개인이 해결해야한다는 것이었다. 과거 김종필.오하라각서로 한일관계가 타결될때한국정부는 다시 일본에 이문제를 거론못하도록 약속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때문에 우리 삭풍회 회원끼리 일본정부를 상대로 피해보상청구등 직접 싸워야하는 입장에 놓여있다.

또 금년2월 44명의 명단을 갖고 일본 관방장관을 방문했으나 가노우 비서를 통해 선처를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으나 아직 진전이 없다.-현재 삭풍회에서 주력하고 있는 활동이 있다면….

▲북해도신문사를 통해 당시의 영국.프랑스포로병들이 동경재판소에서 재판끝에 현재 승소단계에 있다는 얘기를 듣고 우리문제도 해결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있다. 그리고 UN인권소위원회에 호소문을 보냈으며 린다 차베즈회장은 오는8월 UN총회에서 발표하겠다고 약속했다.

-일본에 청구한 피해보상액은 얼마나 되나.

▲1인당 약6천만엔씩 청구했다. 이 금액은 당시 못받은 봉급및 정신.육체적으로 입은 피해의 대가인 것이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그간 우리정부도, 언론도 모른체하고 있던 차에 대구의 매일신문사에서명단까지 어렵게 찾아주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일본에서는 지방신문인북해도신문사 보도를 통해 우리문제를 더 잘 알고 있다. 우리정부는 우리 포로병들에 대한 명단하나 없고 관심도 갖고있지 않다.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전라도지역의 몇몇 포로병회원은정신대피해자들측에 끼여 피해보상을 기대하고 있을 정도이다.

〈모스크바.송광호특파원〉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