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쟁탈 피의 보복 악순환

입력 1995-07-06 00:00:00

후투와 투치.아프리카 대륙 중부 빅토리아호와 키부호 틈새에 끼여있는 강원도 크기의소국 르완다와 부룬디에서 이 두종족은 철천지 원수다. 한쪽이 살인을 하면대학살로, 하나가 정권을 잡으면 다른쪽은 불같이 일어나 반군으로 맞선다.르완다에선 지난해 내전이 시작된 후 1백여만명이 종족간 '피의 보복'으로 살해당했다. 총인구가 7백50만명이었으니 7명중 1명꼴. 양측은 종족의 씨를 말리기 위해 부녀자와 어린이까지 손발을 묶어 파묻어 버리는 잔혹한 학살도 서슴지 않고 있다.

곤봉에 못을 박아 어린이들만 집중적을 살해한 경우도 있었다.59년 정권을 잡은 다수 후투족(85%) 정권은 투치족(14%) 말살을 공공연히국민들에게 선동했다. 방송에서 조차 "투치의 씨를 말려라"고 외칠 정도.한 마을에서 린치로 가족이 떼죽음을 당하는 것도 예사였다. 따라서 투치족반군 르완다 애국 전선(RPF)은 정권을 잡지 못하면 종족이 아예 지구상에서사라진다는 절대절명의 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마침내 지난해 4월 후투족 출신 주베날 하비아리마나대통령이 비행기사고로 사망하자 어수선한 틈을 타 3개월에 걸친 집중공세로 정권을 탈환하는데 성공했다.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정부전복에 성공한 것은 이러한 절박함이 바탕이 된 것이다.RPF는 엄격한 군기로 이름높다. 내전중 민간의 성폭행과 살인을 자행한 조직원 수십명을 공개 처형한 것이 좋은 예다. 그러나 90년까지만 해도 군사적인 면에서 후투족 정부군에 열세였다. 병력도 우간다 난민수용소를 근거지로투치족 청년 4천명이 고작이었다. 대부분 후투족에 의해 가족이 학살당한 경험을 가진 '원한 맺힌' 청년들로 적개심만 강할 뿐 군사와 전략적인 면에선 약세를 면치 못했다.

90년 10월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였던 고프레드 그위계마가 살해당하고 폴카가메(38)가 사령관에 오르면서 반군의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했다. 86년 집권한 우간다 무세베니 현대통령이 이끌던 국민저항군(NRA)에 가입해 실전경험을 익힌 그는 엄격한 군기와 공정한 대우, 보급선 확보등으로 1만4천명까지 병력을 키워냈다.

카가메는 내전동안 다수파 후투족의 무자비한 학살에도 불구하고 보복살인극을 벌이지 않아 그나마 무고한 희생을 줄인 인종화합주의자라는 평을 받고있다. 그는 르완다의 새정부에서 부통령과 국방장관등 요직을 겸하고 있다.한편 르완다와 '닮은꼴'인 부룬디에서도 최근 '제2의 르완다학살'로치달으면서 종족전쟁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부룬디내전은 10월 투치족이주축이 된 군장교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첫 민선대통령인 후투족 출신 멜시오르 은다다예대통령을 살해하면서 시작됐다. 이 쿠데타는 결국 불발로 끝나고말았으나 곧바로 양종족간의 내전으로 비화되면서 현재까지 10만여명이 피살됐다.

부룬디는 후투족이 정부를 이끌고 투치족이 군부를 장악하고 있는 이중구조라 르완다보다는 다소 양호한 편. 그러나 65년 이래 네차례의 쿠데타를 겪으면서 종족간 주도권 다툼이 치열해 한차례 광란의 '대학살극'이 벌어질소지는 충분히 있다.

전문가들은 지구상에서 캄보디아 킬링 필드같은 대학살극이 벌어진다면 르완다와 부룬디일 것이라고 말한다. 1인당 GNP가 3백달러에도 못미치는 이들아프리카 빈국이 '피의 성찬'을 물릴 날은 요원해 보인다.〈김중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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