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데스크-가장 듣고싶은 마음

입력 1995-07-05 00:00:00

제가 잘못한 탓에40여년전의 사건이지만 아직 생생히 기억나는 일이 있다.

지금은 잊어버렸지만 무슨 놀이 끝엔가 동네의 열두어살 또래끼리 싸움이붙었었다.

한 녀석은 골목대장 노릇을 하는 싸움꾼이었고 다른 쪽은 얌전한 애였는데싸움꾼의 행패에 견디다 못한 얌전이가 욱하고 덤비는 바람에 일어난 싸움이었다. 결과는 보나마나 골목대장의 완승이었고 얌전이는 순식간에 눈두덩이에 피멍이 들고 코피가 터지고 엉망진창이 됐었다.

당연히 양쪽 집 어머니가 뛰어나와 싸움은 끝나버렸는데 그 다음 장면이인상적이었다.

골목대장어머니는 대뜸 싸움꾼 아들녀석의 뺨을 볼이 부어오르도록 세차게서너번 때리더니 얌전이어머니에게 "죄송합니다. 제가 부실해서 아들 놈을잘못 가르쳤습니다"라고 정중히 사과하는 것이었다.

얼핏보면 별것 아닌 것도 같지만 근래들어서는 "제가 잘못 가르친 탓에…"하던 그 여유롭고 겸손하던 마음은 간곳 없고 자식놈 두둔하기에 급급한 세태뿐인 것 같아 새삼 과거사가 새로워지는 것이다.

이번에 참사를 불러 일으킨 삼풍백화점의 소유주는 자신도 백화점 붕괴로재산손실을 입은 피해자라고 궤변을 늘어놓아 우리들을 아연실색케 했거니와정말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분명한 잘못을 저지르고도 '내가 잘못한 탓에…'가 아니라 '너 때문에…'를 너무나 당연하고 스스럼없이 써 먹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야박하고 속이 비좁아 남의 탓하기는 마찬가지인 것같다.

민심 두려워 해야

민자당은 지난 6·27지방선거에 분명히참패해 놓고도 내 탓에 따른 민심의 이반(이반)이냐 남의탓인 지역주의의 할거때문이냐를 놓고 당내에서 옥신각신이더니 가까스로 개혁추진세력의 오만으로 민심이 이반됐다는 자성론으로 당론의 가닥을 잡은 것도 같다. 그러나 당권을 쥐고 있는 당총재가 지방선거결과에 일체 언급치 않은채 문책인사조차 뒤따르지 않은 것을 보면 실정으로 민심이 이반된 것을 걱정하는 것보다 TK출신의원들의 동요를 의식한배려 아니겠느냐는 추측도 터무니 없는 낭설만은 아닌 것만 같다.결론적으로 선거 참패원인이 지역할거주의 때문이든 민심이 돌아선 때문이든 간에 정부수립이래 최대의 참패를 당하고도 '내탓'이 아니라 '남의 탓'으로 돌리려고 안간힘쓰는 그 무신경과 몰염치에 우리는 어안이 벙벙한 것이다.

민심을 두려워하는 정당이라면 이번과 같은 선거결과가 나오는대로 즉각 "우리당이 부덕한 탓으로 여론의 원하는 바를 몰랐다"라고 마음의 창을 열었어야 했었다.

야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선거결과 국민들이 지역등권주의에동참했음을 확인했다고 큰 소리지만 이도 온당한 시각은 아닌 것 같다.다른 곳은 그만두고라도 적어도 대구·경북에서만은 아당이 반민자당 정서에 따른 반사이익을 보았다고 보모아야 옳을 것같다.

여유로운 마음 기대

대구·경북뿐 아니라 전 국민 모두가 정치권이 다시 3김시대로 역류하기를바라지는 않을 것인데도외형상 80년대 정치구도대로 후퇴시킨 결과에도 득의연 한다면 이 또한 말이 안된다.

차라리 DJ와 JP가 "정치 시작한지 30년이 지났지만 내고향 땅을 벗어나서는 조금도 지지세력이 늘지 않은 것은 나의 부덕의 소치"라고 자성하는 것이훨씬 돋보일 법도 한 것이다.

왕조시대 임금들은 걸핏하면 '과인이 부덕한 탓으로…'라면서 남을 탓하기전에 내 탓을 먼저 내세웠었다. 이러한 자세야말로 언로(언로)의 창문을 열기위한 몸가짐이 아니었던가 싶다.

절대권력자가 스스로의 입으로 나는 모든 것을 잘하고 있다고 목청을 높일때 누가 감히 직언을 할것인지는 불문가지 아닌가. 그 보다는 내가 부덕해서…라고 비하할때 언로가 훨씬 활기를 띨것은 뻔한 이치다.

우리는 여당인 민자당의 참패는 확인하면서도 차세대의 정국을 주도할 인물도, 정당도 찾아내지 못한 일종의 정치공황기에 살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모르겠다.

그래서 더욱더 잘못이없으면서도 오히려 '내가 부덕한 소치로…'라고 겸손할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을 듣고 싶은 것이다.

김찬석(중부지역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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