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북 쌀지원 재개

입력 1995-07-04 08:00:00

공개할수 없는 사과는 진정한 의미에서 사과라고 할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정부는 북한측의 어중간한 사과문을 수용하고 인공기게양 강요로 중단됐던대북쌀수송을 재개했다.지난달 21일 중국 북경에서 열린 북한과의 쌀회담이 합의에 이르자 우리정부는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하루빨리 북한 동포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기 위해2천t의 쌀을 선적시켜 씨 아펙스호를 동해항에서 출항시켰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무뢰한으로 소문나있는 북한당국은 북경합의는 물론 국제관례까지 무시하고 태극기를 내리고 인공기만 단채 하역작업을 완료한후 우리 배를 돌려보냈다.

우리는 북한의 체면과자존심을 고려하여 그들의 요구대로 무상으로 주는쌀을 원산지 표시도 하지 않았으며 또 한국국적 선박의 왕래가 자칫 체제유지에 지장이라도 줄까봐내항으로 접안할때는 양측국기 모두를 내리도록 하는 배려를 해주었다. 그러나 북한은 공짜로 쌀을 얻는 입장임에도 무장군인들을 배치하여 "태극기를 내리고 인공기를 게양치 않으면 신변의 안전을 보장할수 없다"고 위협했다고 한다.

우리정부는 쌀지원배의 인공기게양 사건을 접하고 씨 아펙스호에 이어 출항한 돌진호·이스튼 벤처호·행진호등 3척의 선박에 대해 회항지시를 내리는 한편 대북쌀지원을 중단하고 북한에 공식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요구했다. 북한은 우리의 요구대로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전금철고문 명의로 '일꾼들의 실무적 착오로 불미스런 일이 일어난데 대해 유감을 표시'하고 '앞으로 호상 그런 일이 없도록 할데 대해 언명하는 바이다'는 전문을 보내왔다.우리 정부는 이 전문을 접하고 3일 통일원에서 관계장관회의를 소집, 이것을 공식사과로 받아들일것을 결정하고 일시 중단했던 대북쌀수송을 재개하는 동시에 북경합의에서 약속했던 15만t을 무수정 지원키로 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부는 쌀지원 재개소식은 국민들에게 알리면서도 북한이 보내온 사과문은 내용의 일부만 떼어내서 발표했을뿐 전문은 극비문서로 덮어두고 있다.우리가 무상으로 주는 쌀을 싣고간 배가 인공기를 달았다는 수모적인 사건에 대해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으며 일부 강경파들은 대북쌀무상지원 자체를반대하고 있다. 더욱이 오늘 아침 일본 산케이신문은 "한국과 일본에 쌀 지원을 요청한 북한은 1백80만t의 쌀을 군량미로 비축하고 있으며 이는 전시 6개월분의 식량"이라고 보도하자 북한에 대한 쌀의혹은 증폭되고 있다.우리정부의 대북외교는 언제나그렇듯 당당치 못하고 무엇에 쫓기는 듯한인상을 지울수가 없다. 공짜로 주면서 칭송은 고사하고 모욕을 당한다는건참을수 없는 일이다. 주고 받음에 있어서 주는자의 자세가 있고 받는자의 자세가 있다. 대북문제는 항상 신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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