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 9월12일 해거름이 진 오후 8시40분.소음기를 단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페루 국가대테러위원회(딘코테) 요원들이 수도리마 1번가 459번지를 급습했다. 허공에 공포를 쏘며 "움직이지 마!"고함칠때 사내는 창가에서 읽고 있던 책을 놓으며 도수높은 안경너머로 문가를 힐끗 쳐다봤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담담한 모습이었다.그가 바로 모택동주의반정부 게릴라 '빛나는 길'(센데로 루미노소)의 지도자 아비마엘 구즈만(60). 80년 정부전복을 목표로 봉기해 12년동안 2만3천명의 희생자를 낸 '페루의 폴 포트'였다.
'빛나는 길'은 구즈만과 동격이었다. 모든 투쟁전략이 철학교수출신인 그에게서 나왔다. 따라서 그와함께 2인자 엘레나 이파라구이르, 9명의 반군지도자, 2백여명의 핵심조직원들이 줄줄이 검거됐기에 '빛나는 길'의 붕괴는눈앞에 온듯 했다.
그러나 이후 3년동안 페루정부가 갈구하는 '빛나는 길'의 쇠락은 오지 않았다. 이후 7천명의 희생자를 더 내면서 여전히 페루정부의 골머리를 썩히고있다.
'빛나는 길'의 끈기는 놀랍다. 그들은 해외도피처도 없고, 지원해 주는 우호적인 단체도 없다. 무기도 무기상인들로부터 일일이 구입해야 한다. 단지5천~2만명가량의 행동대원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12만명의 정규군과 20만명의 민병대를 보유한 정부군을 상대로 엄청난 전투를 치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 원천은 국제암흑가의 '검은 수표' 마약, 페루는 코카인원료인 코카나무잎 생산량이 전세계의 60%나 되는 주산지다. 정부의 코카인원료 재배 척결작전으로부터 농민을 보호해주면서 자금도 모으는 일석이조의 자금원인 것이다. 한해 2천만달러(1백60억원)에서 4천만달러까지 마약으로 전투자금을 조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빛나는 길'의 자양분은 이보다 오랜 군사정권에서 나온 사회불안과 부의편중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70년대 페루를 통치한 군사정권은 잔인하고 부도덕하기로 악명 높았다. 마약밀매업자들과의 거래도 서슴지 않았으며 반군을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무고한 수많은 주민을 희생시켰다. 군부가마약재배지를 직접 관할, 엄청난 검은돈을 챙기기도 했다.
원주민인 인디오와 혼합페루인들이 유럽인 후예들에 밀려 하층민으로 자리잡으면서 생긴 부의 편중문제도 반군정서를 부추겼다. 페루 통계청에 따르면국민의 87%가 잠재실업자이며 2천2백만 인구중 60%가 식량난에 허덕이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풍부한' 영양분으로 인해 반군은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고 세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교조적인 모택동주의나 민족주의 성향을 띠고 있는 '빛나는 길'은 정부를전복시킨뒤 노동자 농민이 통치하는 국가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페루 남부 안데스산맥 근처에 있는 후아망가대학에서 조직돼 수도 리마에서동남쪽으로 5백70㎞ 떨어진 아야쿠초와 인근 밀림지역을 거점으로 하고 있다.
구즈만이 체포된 뒤 일시적으로 지휘공백상태가 이어졌으나 2대 지도자인마르지클라보 페랄타(여.95년3월17일 체포), 3대지도자 오스카 라미라즈 두란드가 구즈만의 뒤를 잇고 있다. 특히 '펠리치아노 동무'로 알려진 두란드는 페랄타보다 훨씬 공산주의에 투철하고 적극적이어서 '제2의 구즈만'으로성장할까 페루정부를 긴장시키고 있다.
후지모리대통령은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오는 7월28일까지 수단과 방법을가리지 않고 '빛나는 길'을 박멸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빛나는 길'의수명이 후지모리대통령보다 훨씬더 길 것이라는게 '빛나는 길'을 추적해온전문가의 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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