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군지도자 아비마엘 구즈만

입력 1995-06-30 08:00:00

제자들은 그를 '샴푸'라고 부른다.사람의 의식을 완전히 세척할 정도로 세뇌에 뛰어나다는 것이다. 단적으로보여주는 예는 그의 아내 아우구스타 라 토레. 조직의 2인자인 그녀는 지난88년 투쟁 방향을 두고 구즈만과의견 대립이 있은 후 곧 자살했다. 조직원들은 구즈만의 설득에 의해 자살한 것으로 보고 있다. '빛나는 길'을 위해활동중인 한 신부는 그를 '영혼기술자'라고 표현한다.

그는 레닌, 스탈린, 모택동에 이은 유일한 공산혁명의 기수였다. 모택동주의에 남미원주민의 전통적인 신념을 혼합, 독자적인 혁명이론을 개발해 페루인들을 세뇌했다.

65년 중국 문화혁명 당시에는 직접 북경에서 모택동의 정책을 연구하기도한 독실한 마오이스트.

80년대 들어 공산국가들이 자본주의에 물들어 가는 것을 극도로 혐오, 소련, 중국 심지어 북한까지 비난했다. 등소평이 흑묘백묘을 내세우며 시장경제체제를 주장할때 수도 리마의 전봇대에 '등소평-개××'란 팻말을 단 개를목매달기도 했다.

구즈만은 사생아로 태어나 중산층 상인이었던 아버지와 어머니 가족 모두로부터 배척당한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따라서 책에 파묻히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10세때 이미 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로부터 폭행을 당했고 대학에서는 스탈린에심취한 철학교수의 영향을 받아 열열한 공산주의자가 됐다. 그 역시 62년 아야쿠쵸의 후아망가대학의 철학교수가 돼 학생들을공산혁명 전장으로 몰아냈다.

구즈만은 92년 9월 체포된 후 종신형을 선고받고 리마의 외항 카야오의 한해군기지에서 수형생활을 하고 있다. 이름에 붙던 화려한 수식어 대신 1509번 죄수번호만 그에게 붙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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