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북경 쌀대화의 전망

입력 1995-06-17 00:00:00

남북문제의 주제가 콸라룸푸르 북미간 준고위급회담 타결이후 '핵'에서 '쌀'로 바뀌었다. 북한은 심각한 식량난 타개를 위해 국제무역촉진위원회 이성록회장일행을 일본으로 보내 최근 한일합방 망언소동을 빚은 자민당의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전외상을 비롯한 정계 중진들에게 곡물지원 로비를 벌였다.북한의 은밀한 물밑작업에 접한 일본은 북·일수교를 촉진시키는 최선의 생색용 카드가 바로 대북쌀지원이라고 판단, 한국의 처지는 전혀 고려치 않고 북한에 곡물을 지원하겠다고 들고 나섰다. 한편 우리정부는 경수로지원문제를 비롯하여 남북대화의 물꼬를 틀 방법을 백방으로 연구하고 있는 중에 느닷없이일본의 대북곡물지원이란 선수에 자칫 한반도문제의 기선을 빼앗길 뻔했다.나웅배통일부총리는 일본의 정치권 일각에서 시도되고 있는 대북곡물지원문제에 언급,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고려치 않고 일본이 곡물을 먼저 지원한다는것은 관계를 오히려 어렵게 만들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고 "이는 우리의 평화통일 노력에 지장을 초래할 뿐 아니라 한일관계에도 좋지않은 영향을 미치게될 것"이라고 강도높은 경고를 한바 있다.그래서 일본은 잠시 뒤로 물러서고 대한무역진흥공사가 북한측 실무진을 북경에서 만나 비공식접촉을 가졌으며 그 결실이 '남북간 차관급 쌀대화'로 이어지게 됐다. 그러나 일본은 대북곡물지원 조기실현이야말로 국교정상화 협상재개및 수교의 현실화를 가져오며 그래야만 일본이 남북한 양측에 이중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아래 모처럼 거머쥔 고삐를 단단히 조여쥐고 있다.

일본은 남북한간 차관급 회담의 결론이 어떻게 나든 일본정부와 연립여당 측은 20일을 전후하여 최고 50만t의 쌀을 북한으로 수송한다는 방침아래 준비작업을 서둘고 있다. 이번대북쌀지원 문제의 내막을 살펴보면 우리는 핵문제와마찬가지로 북한과 일본의 틈바구니에 끼어 '들러리'아니면 '봉'이 되고 있다는 피해의식을 지울수가 없다.

오늘 북경에서 열리는'남북간 차관급 쌀대화'도 북한과 일본자민당이 공동연출한 결과로 그것은 진정하고 폭넓은 대화가 아니라 1회용 반짝 회담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본은 대북 선지원을 반발하는 한국의 입장을 도외시할 수없기 때문에 '모양새를 위한다'는 차원에서 남북의 만남을 권유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은 체면을 내세워 한국의 쌀 지원은 정부차원이 아닌 민간차원에서 성사될 것을 고집하면 우리정부는 단 한차례의 회담으로 쌀지원계획은 결렬되든지 아니면 민간기구를 통해 거의 무상으로 지원할 수 밖에 다른 도리가없어지게 된다.

핵문제에서의 미국역할이 한국의 고립이었다면 쌀문제에서의 일본역할은 우리의 소외를 불러올 것 같다. 우리는 대화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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