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오후, 반월당에서 나는여덟살바기 딸애와 함께 건널목 앞에 서있었다. 신호는 빨간불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6월의 하늘에는 게으른 구름 몇 뭉터기가 평화롭게 몸을 부풀리고 있었다. 홀연, 딸애의목소리가 들렸다."아빠, 이게 뭐야?"
딸애의 작은 손가락을따라 내려다보니 거기에는 회색의 보도블록이 있었고, 그 비좁은 틈새로 꽃이 피어 있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허리를 숙여자세히 보려는 순간, 옆에 서있던 할아버지가 딸애에게 말했다."저건 패랭이 꽃이란다. 초여름부터 시작하여 여름 내내 산과 들에 지천으로 피는 꽃이지. 그런데 이런 곳에 피어 있다니.... 알 수 없는 노릇이구나..."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던 옆의 아주머니 한분이 끼어들었다."그래요. 지금쯤 한창 꽃이 피어날 때죠. 패랭이 뿐만 아니라 메꽃, 양지꽃, 붓꽃, 창포.... 그리고 산에 들어가면..."
아주머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옆의 중년 사내도 말하기 시작했다."산에 그득한 솔향은 또 어떻습니까? 짙어진 중키의 잡목들 위로 소나무들이 고개를 내밀고 그 위로 언뜻언뜻 비치는 하늘..."
그러자 그 옆에, 또 그리고 그 옆에.... 사람들 모두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낮은 신음같기도하고, 또 한편으로는 주문 같은 울림이 물결처럼 퍼지는데.
"아빠, 파란불이야"
후두둑 나는 몽상에서 깨어나 바쁘게 바쁘게 건널목을 건너기 시작했다.그 지독스레 시끄러운 반월당 건널목을.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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