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에마누엘 바흐의 고뇌

입력 1995-06-09 08:00:00

카를 필립 에마누엘 바흐는 1714년 서양 음악사의 거봉인 요한 제바스티안바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에마누엘은 전고전주의 음악 양식의 정립에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동생 요한 크리스티안이 "형은 음악을 위해 살고 나는 살기 위해 음악을 한다"고 말했을 만큼 진지한 음악가이었다. 인문, 사회, 과학분야에도 풍부한 소양을 지닌 그는 당대의 문학, 철학, 예술 분야의 주요 인물들과 폭넓은 지적 교류를 이루어나갔으며, 굳은 신념을 지닌 진보적 성향의 지식인이었다.이런 에마누엘 바흐도 현실적 제약에서 언제나자유로울 수는 없었던 듯하다. 그가 1768년부터 함부르크의5개교회 음악 감독으로 일할 당시 당국의 소극적인 재정 지원으로 인해 좋은 연주회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영국인 음악학자 찰스 버니가 함부르크를 방문중이던 어느날 콘서트가 있었는데, 에마누엘의 작품이 형편없이 연주되었고 청중들도 성의와 관심을 거의 기울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버니에게 "나이 50이 넘으면서 적당히 포기해버리고 마음 편하게 지내기로 생각을 바꾸었지요. 어차피 우리 모두 이 세상을하직할테니까요. 그러나 세련된 심미안과 식견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노라면 보다 훌륭한 음악을 들려주지 못한 사실이 곤혹스럽기만 합니다"라고 자신의 심정을 토로한다.

현실적 상황에 순응하면서도 고뇌할 수 밖에 없었던 에마누엘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로 번민하는 우리 주변의 여러 음악가들이 자신들의 고뇌를 삶과 예술을 보다 성숙하게 승화시켜 나가는 은총의계기로 삼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뮤즈 여신께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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