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쌀 무조건 제공 수용하라

입력 1995-05-27 08:00:00

북한의 식량난은 사실이었다. 최근 북한을 탈출해온 귀순자들은 하나같이 '지금 북한은 하루 두끼식사가 어렵다'고 했지만 우리는 그걸 반신반의했었다.북한은 26일 갑자기 일본과 한국에 쌀 원조를 요청해왔다. 우리 정부는 그 제의에 대해 무조건 지원의사를 밝혔다. 그것은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도 마땅히그래야 할뿐아니라 나아가서 조건없는 식량제공이 교착상태에 빠져있는 남북대화의 물꼬를 틀 좋은 계기가 될수 있기 때문이다.이성록북한국제무역추진위원장은 어제 일본 도쿄에서 열린 와타나베(도변미지웅) 전부총리등 연립여당 방북단대표들과의 회담에서 이례적으로 쌀 원조를공식요청했다. 이위원장은 김용순노동당비서의 친서까지 전달하면서 "이 요청은 김노동당 비서와 강성산총리등 북한의 당·정승인을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위원장은 "북한은 지난해 기상이변으로 식량난이 심각하다"고 솔직히 인정하고 "일본의 수입쌀 잉여분 84만t중 80%라도 공급해주되 장마철전인 6월 이전에 공급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위원장은 "어떤 전제조건이나 정치조건만 없다면 한국측 제의도 검토할 것"이라고 밝힌후 와타나베와의 비공식회동에서는 "한국의 쌀을 받아들일 용의를 한국정부에 전해달라"는 부탁까지 했다는 것이다.

북한의 제의가 전해지자 나웅배통일부총리는 즉각 '대북 곡물지원에 관한 발표문'을 통해 "무조건적 쌀을 무상 또는 장기대여로 제공하겠다"고 밝히고 "북측에 제공할 곡물·수량·인도장소및 시기·수송및 운반수단등을 의논할 대표들이 만날것을 제의한다"고 말했다.

우리정부의 김영삼대통령은 지난 3월초 유럽을 순방하면서 대북곡물 지원의사를 밝혔으며 지난 15일 국제언론인협회(IPI)서울총회 연설에서도 이를 거듭재확인한바 있다. 아마 북측의 곡물지원 요청은 우리정부의 거짓없는 인도주의적인 의지를 수락할 수 있다는 간접응답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그러나 북한이 필요한 것은 민생고를 해결하기 위한 쌀이 목적일뿐 남북대화의 재개는 부수목적도 아닌 듯하다. 반면에 북측이 희망하는 쌀을 무조건적으로, 그것도 무상내지 장기대여형식으로 지원하겠다는 배경에는 단절된 대화를복원하려는 포석이 짙게 깔려 있는 것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대북곡물지원'은 남·북한사이에 놓여있는 풀리지 않는 화두같은 이 갭을 어떻게 좁히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다.

우리 정부는 종전까지대북곡물지원에는 '그것이 군량미로 전용될 가능성은배제되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꼬리표로 달았었는데 이번에는 그것마저 제거해 버리고 진짜 북한주민들의 '세끼 밥'을 위한 '무조건적 쌀'을 제공하리라한다. 북한당국은 남측의 제의를 소중하게 받아들이기 바란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