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문 일본 만주조차밀약에 동의"

입력 1995-05-22 08:00:00

중국 근대혁명의 아버지로 불리는 손문이, 정치적 곤경에 처해있던 시절 일본이 구만주를 현재의 약1조엔(약9조원)에 조차하는 것을 인정하는 밀약에 동의했었다는 서한자료를 발견했다고 한 교수가 주장, 대만측의 반발을 사고있다.일본 토야마(부산) 국제대학의후지이 쇼조(등정승삼)교수는 오는 6월 출판예정인 공저'새로운 동아시아상 연구'에 손문이 '만주할양'밀약에 동의한 사실을 적은 미쓰이물산사원 모리 쓰토무(삼각)의 오래된 서한을 소개하고 있다.서한에 따르면 모리는 1912년 2월3일 손문을 만나 대담하는 도중, 군벌(군벌)과 원세개등과의 정치적 대립으로 곤란한 지경에 처해있던 그에게 일본이지원해주는 대신 만주를 일본세력하에 두는 것을 용인토록 요구했다는 것이다.만주이에대해 손문은 "만주를 일본에 일임하고 그 대신 우리의 혁명을 위해 일본에서 원조를 받는다"는 희망을 밝혔다고 기술했다. 손문은 특히 일본이 4일이내에 당시의 1천만엔, 지금 시세로 환산해 1조엔안팎에 달하는 차관을 준비했다는 전보를 보내오면 일본의 만주조차를 인정하겠다고확언, 모리는 그와같은 내용의 전문을 마쓰다 앞으로 보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1천만엔의 자금준비가 되지않아 밀약은 실현되지 않았고, 손문은 정쟁에 패해 모리가 서한을 보낸 1주일후 원세개가 임시 대총통에 추천되어 3월10일 정식취임하게 됐다고 후지이 교수는 주장했다.

하지만 대만의 국민당중앙당사위원회 전전임위원인 진재준씨는 '모리서한'이 전혀 근거없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진씨에 따르면 손문은 1912년 1월1일 중화민국 총통에 취임했을 때 전국민들에게 "국가의 기본은 국민에게 있고 한·만주·몽골·회·티베트 등 각민족의 땅을 합해 한 국가가 되자"고 선언하는한편, 만주에 대해서는 "동삼성으로 영토통일의 범위내"라고 언급했다는 것.따라서 손문이 그 직후 동삼성을 일본에 조차시키려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일이며, 당시에는 손문의 권력도그 지역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등을 들어 '모리서한'의 내용은 절대 진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도쿄·김종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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