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을 넘게 사막에 묻혔던 돈황의 석굴들. 불상과 그림들로 꽉 찬 석굴은살아 있는 전시장이었다. 황막하기 짝이없는 사막에서 지난 몇 세기를 웅비했던"비천녀상". 푸른 색감으로 물들인 옷깃을 스친 억센 모래바람에도 여전히 아름답고힘있는 자태다.석굴과 사막. 이 둘을 어떻게 연결할까. 더군다나 환경을 사이에 두고 설명한다는것은 결코 용이한 일은 아니었다. 오직 "이렇게 생생히 살아있는것이 사막화의덕분"이라는 역설적인 결과에 놀라는 수 밖에 없다.지척의 명사산과 월아천. 모래가 이동할때 서로 몸을 부벼 소리가 난다는모래울림 산과 아름다운사막속의 샘·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관광명소지만 그차이는 공해와 무공해의 현격한차이만큼 시사하는 점이 많. 이 둘이 공존하는 환경현장은 물론 자연적이다. 그러나 자연환경은 결국 인간의 인식부족과파괴력에 항상 무너질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두 개의 극과극이 만들어 내는 상징적인 의미는 결코 만만치 않다. 월아천만 해도 그 풍성했던 수량은 지금 겨우 명맥만 유지할 정도라고 한다. 그 어느것의 힘이 작용한것도 아니. 기후의 변화로 비가 적어지고 있기 때문이라는게 학자들의 풀이다. 기후변화는 이처럼 사막의 오아시스도 무너뜨린다. 무서운 일이다. 다만아주 천천히 그리고 눈에 띄지않게 자연을 변화시키고 있기에 이를 얼마나 정확하게 인지하고 대처하느냐가 앞으로 인류에게 부여된 과제다.돈황을 지나 취재진들이 발길을 향하는 곳은 난주. 지구상 가장 활발한 사막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곳이다.또한 유수한 사막관련 전문가들이 포진해 사막의 확산을 비롯 그 이용을 연구하고 있다.
유원과 난주간은 기차를 이용했다. 하서회랑의 아랫부분을 가는 셈이다. 하서회랑은황하의 서쪽에서 부터 돈황에 이르기까지 북으로 고비사막과 남쪽의치이렌(기련)산맥 사이의 동서 800km 지역. 긴 띠 모양의 지대를 말하는데 다시말하면 황하서쪽의 긴 복도라는 뜻이. 난주는 바로 하서회랑의 끝에 자리잡은 공업도시다.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것은 황하가 난주와 붙은 광대한 텅커리 사막 옆을 지나고 있어 강과 사막이 만나는 지역이라는 점이다.유원에서 난주까지는 약 1000km. 기차로는 하루를 잡아야 한다. 쾌차(급행)는 좀 빠르지만 좀체 표를 살수가 없다. 차창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고비. 우루무치에 산다는 옆자리 과일도매상 팽씨와는 황사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친근해졌다. 지난해 8월23일에는 황사가 하도 심해 기차가 이틀간 운행을 중단하기도 했다고 팽씨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때문에 장사도 좀 손해를 봤다고 했다. 과연 황사가 기승을 부려 취재진에게도 그같은 불행중의 행운(?)를경험할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했지만 끝까지 그 행운은 찾아 오지 않았다.난주가 가까워 오자 땅은 점점 붉다. 황토지역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 옆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수수밭. 고비대신 수수밭만 붉게 타고 있었다.난주사막연구소. 시가지를 흐르는 황하의 탁한 물줄기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 황하를 낀 환경은 어떤 환경일까. 황하는 중국민족에게엄청난 문명을탄생하게 했지만 한편으로는 홍수라는 재앙도 가져다 주었다. 오죽했으면 황하의 물길을 잡는 사람이 천하를 얻는다고 했을까. 칭하이(청해)성에서 발원한황하는 황토고원을 지나면서 해마다 20억t의 토사를 실어 나른다. 그래서 물반 흙반 이라는말까지 나왔. 이름에 걸맞는 자연 현상이다. 황하 물 맑기를기다리는 일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이기에 백년하청이라는 말이 나올정도다.연구소는 난주시 중심가에 위치해 있었다. 마침 연구소에서는 제1회전국한구환경공정청년학술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하훈성소장(56)이 반갑게 맞아 주었.한국 취재기자로는 처음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