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도시의 푸른나무

입력 1995-05-17 00:00:00

"저 차치들 또 왔군. 중림동에 작은 공장들 많잖아. 가구공장, 플라스틱 사출공장, 기계 부속품공장들, 거기에 외국 노동자들 많이 쓰잖니. 거기서 일하는 치들이야. 불법 체류자들이지. 맥주도 꼭 한사람에 한병만 시켜. 안주도 안시키구. 저 작은 병, 간에 기별이라도 가겠니. 조금 있다봐. 주머니에서 소주나 빼갈을 꺼낼테니. 맥주에 섞어 먹어. 취하곤 싶은데 털터리들이니깐"순옥이가 말한다. 깜조록한 말라깽이와 몸집이 큰 흑인이 무대로 나온다. 둘이서 껴안는다. 블루스곡에 맞춰 춤을 춘다."어찌보면 불쌍해. 돈 벌러 머나먼 타국으로 와서, 손가락도 잘리구, 매도맞구. 고향엔 부모형제, 처자식이 굶주리며 기다리겠지. 돈 벌어 언제쯤 돌아오려나 하고. 우리두 저런 시절 있었다잖아"

순옥이가 춤추는 둘을보고 말한다. 흑인이 우리 쪽을 보고 키들키들 웃는다. 곱슬머리에 눈이 크다. 이마에 버짐이 있다. 검고 큰 입술에 이빨이 희다.순옥이를 보고 한쪽 눈을 찡긋한다. -돈벌어 돌아온다구? 돈이 그렇게 쉽게 벌리나. 촌사람들 속기 꼭 알맞은 데가 대처 아닌가. 읍내만 나가두 촌사람들 등쳐먹는게 중개상인데. 니 어미는 바람이 났으니 그렇다치구, 시애가 고생하겠다. 세상물정 모르는 그 어린 것이. 할머니가 말했다. 엄마가 시애를 데리고나간 뒤였다. 할머니는 틈만 나면 나루터를 서성였다. 나도 엄마와 시애를 기다렸다. 그들은 끝내 오지 않았다.

"예리, 너 여기 있었구나. 손님 찾아"

맘보다.

"지겨워"

순옥이가 말한다. 나로부터 떨어진다. 맘보를 따라 무대에서 내려간다. 나는멀뚱히 서 있다. 잠시 뒤, 나는 그들을 뒤따라 간다. 클럽을 나선다. 단란주점으로 들어간다. 홀 좌석은 자리가 거의 찼다. 순옥이는 보이지 않는다. 종식이형, 박수형, 돈필이가 입구에 앉아있다. 나를 보고 아는 체한다. 그들은 최상무의 방탄조끼이다. 최상무가 있는 곳에 그들이 있다. 그들은 무대를 보고 있다. 앳된 계집애가 권주원의 '저 평등의 땅으로'를 부르고 있다. 나는 홀 뒤쪽으로 빠진다. 맘보와 마주친다.

"다들 오셨어"

맘보가 엄지손가락을 꼽아 보인다. 나는 안쪽으로 들어간다. 순옥이가 어느방으로 들어갔는지 궁금하다. 나는 문을 연다.

"넌 뭐야!"

뚱뚱한 사내가 소리친다. 그는 옆에 앉은 호스테스의 가슴 깊이 손을 넣고있다. 전에도 있던 예란이다. 예란이는 낮에 재봉공장에 다닌다. 아버지 수술비를 벌어야 한다고 말했다. 얼굴 낯선 호스테스가 마이크를 잡고 있다. 나는방을 잘못 짚었다. 꾸벅 절을 한다. 얼른 문을 닫는다. 다음 방문은 조심스럽게 연다. 기요, 짱구, 깡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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