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은 1953년 전국남녀중고육상대회에서 우승한 이후 전국무대를 휩쓸며 새로운 육상명문으로 발돋움했다.새로 육상부를 맡은 이경철선생은 신인선수들을 발굴, 지도하고 중등부의 우수선수들을 스카우트하는데 힘을 쏟았고 학교측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이때 나타난 선수들로는 단거리에 정기선 김형팔 황대구 손경수, 중거리 천태화, 장거리에 이창훈 지상욱 등.
영남중 출신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천안중을 졸업한 정기선 김형팔 등의 경우처럼 본격적으로 육상을 하기 위해 영남을 찾는 다른지역 선수도 많았다.경북도내 대회에서 대륜과 계성을 제치고 나선 영남은 전국대회에서도 돌풍의 핵으로 떠올랐다.
전국남녀중고육상대회의 경우 1953년 첫 우승 이후 대회3연패의 위업을 달성했고 전국체전 역전경주 등 각종 대회에서 영남선수들은 눈부신 활약을 보였다.
그러나 영남의 이같은 성장 뒤편에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점점이 숨어있다.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배태화선수사건.
1953년 8월9일. 손기정 베를린올림픽 제패기념 단축마라톤대회가 달성공원~동촌을 왕복하는 20km구간에서 열렸다.
개인전 및 학교대항전으로 벌어진 이날 대회에는 영남 대륜 계성 등 대구지역학교뿐만 아니라 서울의 명문 양정 배재 등 전국에서 60여명의 선수가 참가해 성황을 이뤘다.
이때의 대구날씨도 지금 못지않아 경기가 시작한 정오에는 기온이 34도를 웃도는 폭염이었다.
더위를 못이겨 중도기권하는 선수가 절반을 넘을 정도.
영남고 1년생으로 대회에 참가한 배태화 역시 20㎞를 완주하기란 쉽지 않았다.
달성공원을 출발, 동촌반환점을 돌아 동인로터리에 접어들때쯤 지칠대로 지친배태화는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뒤따르던 응원단이 황급히 얼굴에 물을 뿌렸고정신을 가다듬은 그는 다시일어나 골인지점까지 내달렸다.
1명의 기권자도 없이 완주한 영남고는 우승을 차지했고 선수들은 앞다투어달성공원앞 개천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어린 배태화는 골인지점을 통과한뒤 그대로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급히 응원트럭에 실려 주덕근교장 사택으로 옮겨진 그는 "내가 골인했는데…"하며 헛소리를 하다 그날 오후8시쯤 숨을 거두고 말았다.
경북체육사상 최초의 희생자였다.
경북고령 출신으로 가정형편이어려워 진학을 포기한 그는 육상실력을 인정받아 영남고에 스카우트됐다.
어렵사리 고교에 진학한 그가 육상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것은 당연한 일.그가 숨지자 대구에 있던 손기정씨는 광목 한필을 배군의 가족에게 전해 조의를 표했고 영남고 동창회와 재학생들은 성금을모아 논 두마지기를 사주었다.
그의 장례는 학교장으로 치러졌고 그이후 3년동안 8월9일만 되면 육상부 합숙소에는 선수들이 주머니를 털어 마련한 제사상이 마련됐다.한편 그가 숨지고 12년만인 1965년 5월5일에는 영남고 정문옆 한자리에 졸업생과 재학생의 성금으로 '배태화기념비'가 세워져 학교이전과 함께 현재까지남아있다.'오렌지색 유니폼사건'은 영남고가 전국무대를 석권하기 시작한 초창기의 일.
1954년 전국중고대항육상경기대회가 열린 서울운동장.
전년도 중등부와 고등부에서 우승, 파란을 일으켰던 영남은 이경철 이진화선생의 인솔하에 35명의 대선수단이 출전했다.
당시 우승후보는 영남과 서울의 육상명문 양정과 배재, 인천의 인천고와 인천공고 등이었다.
그러나 이창훈 지상욱 천태화 손경수 등 쟁쟁한 멤버들을 보유하고 있던 영남은 벌어지는 경기마다1~3위를 휩쓸며 대회2연패를 향해 순항을 거듭해나갔다.
경기중 갑작스레 소나기가 쏟아져 영남중 고 선수들은 차례를 기다리며 스탠드 밑에 모여있었다.
여기에 양정고선수들과 응원단이 들이닥쳐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문제는 영남의 유니폼색깔.
손기정씨를 배출한 육상명문 양정고의 유니폼은 전통적으로 오렌지색이었고영남역시 오렌지색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이들은 "촌놈들이 누구 허락받고 오렌지색을 입었느냐"며 선수들의 팬티를벗기려 들었고 장거리 유망주 이창훈은 옆으로 끌려나가 얻어맞기까지 했다.비가 그쳐 경기가 속행된 후에도 일부응원단은 1백m경기에 나선 선수들의팬티를 붙잡고 "옷벗고 달려라"며 행패를 부렸다. 인솔교사들이 항의하고 상대방에 제재도 가했지만 경기장 분위기는 험악하기 짝이 없었다.이경철씨는 "경기가 끝난후 인솔교사들이 앞뒤로 서서 선수들을 호위한채 여관으로 돌아왔습니다. 선수들의 사기가 말이 아니어서 생각끝에 한밤중에 동대문시장을 뒤져 밤색천을 사다 급히 유니폼을 만들어 입혔습니다"라고 말했다.유니폼을 바꿔 입고 다음날 경기에 출전한 영남선수들은 무사히 대회를 마쳤고 결과는 영남의 우승으로 대회2연패였다.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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