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적으로 저명한 독문학자로서 수년간 독일 아헨대학의 총장을 역임했던금년 85세의 한스슈베르테교수가 사실은 1945년까지 악명높은 나치친위대소속장교인 한스-에른스트 슈나이더임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있다.베를린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발견된 그에 관한 자료에 의하면 1937년에 나치친위대에 가입한 슈나이더는 이후 베를린지대책임자로 그리고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는 악명높은 보안근무를 하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 밖에도 그가 네덜란드에서 한 일은 다하우(Dachau)강제수용소에 인마살상용 의료장비를 조달해주는 일을 했다고 한다.1945년 5월 8일 독일의 무조건 항복으로 네덜란드에서 종전을 맞은 슈나이더는 곧바로 자신에 관한 자료들을 없애고 그 스스로 실종신고를 냈는데 이는 그의 직책상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고 한다.
1909년생의 한스 에론스트 슈나이더 박사는 실종되고 1910년생의 한스 슈베르테로 독일에 입국한 그는 두번째 박사학위를 받고 전쟁미망인으로 위장해 살고 있던 그의 본부인과 다시 결혼했으며 그의 친딸을 양녀로 입양하는 등 철저한 변신을 했다고 한다.그리고 그때부터 독문학자로서 출세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는데 그가 즐겨 다룬 주제는 '괴테와 독일이데올로기'인 것으로 알려졌다.16년전 정년퇴직한 그는아이러니컬하게도 독일정부로부터 영예의 일급철십자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독일언론들의 보도에 의하면 그의 변신을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던것으로 드러났는데 에어랑엔 대학의 동료교수는 1950년대에 벌써 그의 과거를알았다고 한다.그러나 최근 2년간 슈나이더의 과거를 조사하고 있던 익명의제보자가 전화를 하기전까지 모두 침묵했었다는 것이다. 이와같은 슈베르테교수의 과거가 알려지자 그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며 놀리고있다. 한 익명의 제자는 슈베르테교수는 "가장 진보적이며 가장 명망있는 교수였다"며 "학자로서 그리고 인격으로 봐서 흠잡을 데가 없는 분이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제자들의 진술은 슈베르테교수가 60년대말 대학제도개혁바람이 불때 가장 적극적인 지지자로서 활동했고 이때 좌파자유주의자로 명성을 날린 사실을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한편 한스 슈베르테교수는 그의 과거에 관한 네덜란드방송의 보도에 대해 지난주 독일국영 제1텔레비전과의 인터뷰에서 그의 변신자체는 인정한다. 그러나어떠한 잘못도 인정하지 않는다.그는 이 자리서 "나는 전쟁범죄자가 아니다"고 말하고 "대량학살에 대해서는 몰랐다"고 밝혔다.
'독일학계의 우상'인 슈베르테교수는 증거불충분으로 법정에 설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가 이름까지 바꿔가며 50여년간 추구해왔던 학자로서의 명예는 끝장날 운명에 처해있다. 왜냐하면 주문부성의 이제 그에 대한 교수명칭을 거두어 들일 방침이기 때문이다. 늙은 슈베르테교수는 이번주 슈피겔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말했다. "내가 지금까지 보덴호수(독일남부지방에 있는 큰 호수)위의 얇은 얼음판위에서 말을 타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 비로소 알았다"
〈보훔(독일)·조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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