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전 세계인에게 24시간 먼저 나치가 무조건 항복했다는 기쁨을 전했다"미국 캘리포니아주 몬테리 페닌슬러지 편집국 벽면에 붙어있는 이말은 지난 63년 고인이 된 이 신문의 전 편집부국장 에드워드 케네디를 추모한 말이다.에드워드 케네디는 2차대전중 미국 AP통신 유럽전 종군기자로서 지난 1945년5월7일 새벽 독일 나치군이 무조건 항복했다는 소식을 연합군사령부 검열관의반대에도 불구, 전세계에 타전해 세계 언론사상 최고의 특종을 한 인물이다.1945년5월6일밤 케네디 기자는다른 16명의 종군기자들과 함께 연합군이 제공한 C-47군용기를 타고 런던에서 프랑스 랭스로 날아갔다. 바로 독일군이 무조건 항복을 한 곳이었다. 나치군의 항복과 수백만의 생명을 앗아간 2차대전의종전에 대한 역사적 증인이 될 것이라고흥분해 있던 케네디기자에게 던져진연합군사령부 공보관 프랭크 알렌 장군의 다짐은 "참전4개국 대통령이 공식발표를 할때까지는 단 한줄도 쓸수 없다"는 보도지침이었다.예정대로 다음날 새벽 2시41분2명의 나치장군이 미 했불 간4개 연합국대표자 앞에서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지만, 스탈린의 요청을 받은 워싱턴 당국이 36시간후인 9일 오후 3시까지 발표를 미루라고 하는 바람에 그는 이미 기자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채 12시간도 지나지 않아 자신이 휴대하고 있던 단파라디오에서 "독일국민들이여, 오늘 최고사령부는 무조건 항복을 합니다"는 독일군사령부의 항복방송이 흘러나왔다.
그는 이제 검열은 무의미하다고 믿고 거의 본능적으로 기사를 들고 미국측검열관인 리처드 메릭대령에게 엠바고 해제를 간청했다.
"나는 승전국 국민이 패전국 국민들보다 늦게 종전 소식을 듣는 것을 원치않고, 무엇보다 더 이상 살육이 자행되는 것을 막기위해 기사를 송고하겠다"는케네디 기자의 큰소리에메릭대령은 "하고픈대로 해라. 하지만 당신은 더이상기자일 수 없을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미 군사신문 스타즈 &스트라이프지의 전화선을 어렵게 빌려 단 2백자를 보낸 기사로 케네디 기자와 송고를 도와준 기자는 즉각 기자증을 빼앗기고 AP통신 런던지국도 폐쇄됐다.
더욱 충격적인 일은 6시간 30분만에 런던지국이 다시 문을 열자 동료 종군기자 54명이 "치욕적이며 무분별하고 비윤리적인 배신을 한 AP지국은 다시 폐쇄시켜야 한다"는 탄원이었다.
케네디 기자는 즉각 사표를 냈지만 AP통신사는사표를 수리도 반려도 않고편집국장이 나서 "검열받지 않은 뉴스를 보낸데 대해 사과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케네디기자는 다른 곳에서 온갖 일자리를 찾아 전전했다. 14개월후 아이젠하워대통령에 의해 기자증이 되돌려지자 그는 지방신문사 몇곳을 거쳐 페닌술라지로 옮겼다.
그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분노한 군부에 의해 기자증을 앗긴것보다 동료언론인에 의해 비난을 받은게 더욱 슬펐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기자가 될 것이며 또다시 그런일이 닥쳐도 엠바고를 깰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런일을 당해도 모두가 (쉽게 행동은 못하겠지만) 그렇게 하고 싶을 것이다. 그는 죽음을 무릅쓴 용기로 언론사상 영원히 남을 특종을 남겼다" 미 발행인협회보의 이같은 평가는 그가 죽은 뒤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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