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사후의 북한

입력 1995-05-06 08:00:00

지난 1973년 마지막으로 북한을 방문한 이후 20여년만에 찾은 '위대한 사회주의 지상낙원'에는 변한 것이 별로 없었다.미국의 한 여성 언론인은 9일간 북한을 방문한 뒤 모든 시민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정치지도부와 사상경찰, 겉다르고 속다른 말로 규정되는 전제주의 사회를 묘사한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언급하면서 "이 나라는 오웰의악몽에나 나옴직한 국가"라고 결론지었다.

나는 "오늘 날의 북한사회가 많은 면에서 오웰이 구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못하다"고 지적한다.

오웰이 '1984'를 저술한 지난 48년,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평양태생의 소련군 소좌 출신의김일성은 스탈린에 의해 신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지도자로 앉혀진 이후 지난 해 갑작스럽게 사망할 때까지 북한을 통치하면서 무자비한 전제주의왕조를 만들어냈다.

오늘 날 북한에서는 20여전 내가 봤던 것과 마찬가지로 5~16세의 어린이들에게 '위대한 원수 김일성과 후계자 김정일원수의 영웅적 위업'을 암송하게 하고있다. (군복무를 완전히 마치지 못한 김정일이 어떻게 원수가 됐는지는 하나의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이같은 조기 교육이 전하는 내용은 김일성 부자가 '남조선의 노예상태의 굶주린인민들을 해방할 것'이며 '모든 경제적 성과와 운동경기의 승리, 그리고풍작은 자비롭고 존경스러운 타고난 지도자와 그와 똑같이 자비롭고 존경스러운 아들로부터 나온 개인적 선물'이라 는 것이다.

북한의 학과 과정에 따르면 2차 세계대전은 위대한 김일성 장군과 그의 '혁명군'이 승리를 했으며 김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북한 역사의 애국지사 인명록에 최우선으로 기록돼있다. 또 '조국해방전쟁(한국전)'에 대한 공식적인 설명에는 중국의 '지원병'이 비극적인 분쟁에서 수행한 결정적인 역할을 무시하고 있다.

현재 북한 어린이들 사이에 가장 인기있는 노래 가운데 하나는 '우리는 세상에서 부러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네'로 이는 23년전에도 유행했던 노래이다. 북한 주민들은 자신들이 만드는 물건이 세상에서 최고인 것으로 믿게끔 교육을받고있다. 그러나 이들은 한 예로 북한에서 돌아다니는 벤츠가 독일의 구형 모델을 모방했다는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

사회, 경제 및 정치적 자립을 강조한 김일성의 '주체'사상은 평양의 '독특한'공산주의의 기반이 되고 있다. 그러나 북한체제는 종종 '주체'당강령을 무시하고 일본과 서유럽으로부터 산업기기와 중장비를 수입하고 있다. 심지어 일상용품과 의약품까지도 중국과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으며 이들 수입품의 대부분은 '계급없는 사회'의 특권층인 당 고위관리들만이 차지할 수 있다.이밖에 지난 70, 80년대에 걸쳐 외상으로 물품을 들여와 빈곤에 허덕이는 북한이 서방의 은행과 기업에 갚아야 할 빚이 아직도 35억달러에 달하고 있다는사실 역시 북한 주민들에게는 비밀로 부쳐지고 있다.

이번 북한방문에 동행했던 10여명의 북경주재 미국과 유럽 언론인들은 북한에는 왜 주은래와 등소평 같은 인물이 없는가 의아해 했다. 나는 이들에게 "김일성이 라이벌이 될 가능성이 있는 인물을 모두 숙청했으며 이들은 지난 50년대 중반과 60년대에 로동당내에서 실용주의와 온건파를 대표하는 인물들이었다"고 아주 간단하게 설명했다.

"70년대 초 김일성의 아들은 조직지도·선전담당 당비서로 이미 상당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정일은 당내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자신의 '혁명적 신임'을 구축해야만 했다"고 나는 설명했다.

김정일은 우선 '혁명적 활동'의 하나로 북한 외교관들에게 영국의 런던 타임스,미국의 뉴욕타임스지등 서방의 유력 일간지에 전면 광고를 싣도록했다. 이들 서방유력지에 실린 전면 광고는 김일성의 연설 또는 이론집을 발췌,'탁월한' 업적이나 언사를 찬미한 것이다.

화려한 미사여구와 웅변적 수사를 동원한 이 광고들은 북한 노동당 기관지로동신문에 그대로 실렸다. 로동 신문은 이 광고를 실으면서 1면에 '부르좌 세계의 자본주의 신문에 실린 인류의 태양이자 전세계가 알지못했던 위대한 혁명적 지도자이신 위대하고 경애로운 우리의 지도자에 관한 사설'로 소개했다.김정일은 또한 지난 76년 판문점 유혈 충돌 사건의 책임자로 알려지고있다.당시 30명의 북한 경비병들은 도끼와 쇠몽둥이를 휘둘러 미군장교 2명을 살해했다.

김은 또 한국 정부 고위 관료들의 목숨을 앗아간 지난 83년 아웅산 폭탄테러와 탑승객 전원이 숨졌던 88년의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사건에도 책임이 있는것으로 믿어지고있다.

이때문에 내가 서방 기자들에게 어린학생들의 매스게임에 등장했던 '김일성대원수는 바로 김정일 원수이시다'라는 구호를 번역해주었을때 모두들 놀랐다.어린이들이 부른 노래나 다른 구호들도 모두 김정일이 이제 사실상 북한의 지도자임을 시사해주고있었다.

나는 내가 태어난 바로 그곳의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눌수 있을까 하는기대를 갖고 뉴욕을 떠나 평양으로 왔다.

아침일찍 호텔에서 나와 길거리를 거닐면서 짙은 감색 옷 차림의 남녀 시민들에게 한국말로 '안녕하십니까'라고 아침인사를 건냈지만 거의 모든이들이 나를 본체만체하고 황급히 피해갔다.

이보다 앞서 북경을 떠나 평양으로 가는 열차에서 북한 기업인과 대화를 나눌수 있었다.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은뒤 그에게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했다.

"남조선에도 김대중이나 임수경같은 영웅적인 친구를 갖고있다. 그러나 김영삼은 배신자이며 남조선 인민들은 그를 제거해야한다"고 그는 말했다.그에게 사업을 하면서 얼마나 버는지를 물었다. 그의 답변은 "위대하신 지도자 김일성 수령께서는 당과 조국을 위해 일하라고 교시했다. 돈은 우리에게 별다른 의미가 없다"이라는 것이었다.

중년으로 보이는 이 남자는 북한의 식량 사정을 묻자 "김일성 수령이 우리를떠나시면서 충분한 식량을 주셨다. 이제 김일성수령의 혼령이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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