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대의 야외박물관이자 세계적인 유적지임에도 불구하고 방치돼온 경주남산에대한 종합적인 고찰이 '신라문화' 제10, 11집 합집(동국대 신라문화연구소 펴냄)에 실려 관심을 끌고 있다.동국대 문명대교수(불교미술)는 '경주 남산불적의 변천과 불곡감실 불상고'라는 논문에서 이곳의 수많은 불적(불적)은 신라 유가(유가)불교의 영향으로 집중 조성됐으며 불곡(부처골)의 감실 석굴은 우리나라 석굴의 시원이라고 주장했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확대되어간 남산 불적의 조성에는 유가불교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즉 탑골의신인사와 칠불암, 남산 정상의 용장사(유가불교의 종찰), 장곡골의 삼화령미륵삼존불, 약수골의 대마애불입상등으로 미루어봐서 경주 남산은 유가불교의 성지로 꾸며졌으리라는 추정이다.
탑곡의 서쪽인 부처골 중간에 위치한 감실석굴은 높이 2.8m, 넓이 3.5m, 깊이90㎝로 안에는 등신대 크기의 석불이 안정된 구도, 단아한 형태, 부드러운 양감으로 불력을 내비치고 있어서 삼국시대의 고졸미를 대표하고 있다.이는 감실외형, 독존형의 안정된 구도등이 중국 산동지방의 신통사 천불마애석굴과 일치하고 있어 신라가 한강 유역을 점령한 이래 중국(당)과 활발하게 교류했음을 입증하고 있다.
경북대 주보돈교수(고대사)는 지난해 발견된 남산신성비 제9비와 관련, 남산에성을 축성하면서 신성이라고 명명한 것은 진평왕대의 정치적인 개혁과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즉 단순히 피난용이 아니라 진평왕대의 새로운 지배체제의 출범을 알리는 상징적인 성격을 띄었으며 그에 걸맞게 전국적인 역역동원을 함으로써 지방민들이 국왕에 대한 충성서약을 하도록 하는 목적이 바탕에 깔려있었던 것으로 이해하였다.
경주대 홍광표교수(조경학)는 남산을 정밀지표조사, 이곳 유적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구체적인 보존방법이 마련되어야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경부고속전철의역사가 서남산과 근접한 지역에 결정되어 그 지역에 대한 강도높은 개발이 예상되므로 미리 남산에 대한 시각보호가 이뤄지도록 충분한 검토가 따라야한다고 강조했다. 〈최미화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