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회 참석자〉최공웅 대구고법원장
문양 변호사
서윤홍 변호사
사회:김병호 사회1부장
기록:서영관 기자
△사회:오늘로 우리나라가 근대사법제도를 시행한지 1백년이 됩니다. 근대사법제도 1백년의 의의부터 짚어 봤으면 합니다.
△최원장:1백년은 전환기입니다. 당연히 근대사법제도 1백년은 과거 반성을 통한 앞으로의 사법부 위상을 재점검하는 계기가 돼야 합니다. 국민들에게 법치 실현에 앞장서는 사법부의 참모습을 인식시키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서변호사:우리 사법부의 해방전 50년이 울분과 좌절의 시대였다면 해방후 50년은 스스로 사법부를 이룩한 시기입니다. 다음세대는 어떻게 새시대의사법부를 만들어야할지 새겨야 합니다.
△문변호사:해방직후 혼란과 갈등의 시기에도 우리 사법부는 꿋꿋이 제자리를 지켜왔습니다. 역대 대법원장은 사법부 독립을 위해 싸워왔습니다. 특히 건국후 초대 김병로대법원장은 이승만대통령으로부터 모욕적인 말을 들으면서도 법관의 고유한 자세를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사회:법원사를 보면 사법부 독립 수호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최원장:지난 71년도의 이른바 사법파동이 일어날 당시 박대통령이 3선개헌으로 다시 대통령에 당선됐으나 국회는 야세가 강해졌습니다. 반면 신민당사 난입사건, 다리지 필화사건등 그해 들어 17건의 중요사건이 무죄판결을받았을 정도로 법조 분위기는 자유로웠습니다. 당시 행정부는 박대통령 취임식을 앞두고 무죄판결이 예상되는 공안사건의 선고공판을 연기해 달라는 요구까지 해왔지만 법원은 이를 거절하고 공판을 강행,무죄를 선고했습니다.박대통령은 이때 사법부를 장악해야겠다고 생각한듯 합니다. 당시 저는 이범열부장판사와 함께 반공법 위반 항소사건 증인심문을 위해 제주도로 출장을가게 됐습니다. 저는 민사사건과 마찬가지로 형사사건도 당연히 변호인이출장경비를 부담하는줄로만 여겼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당시 쥐꼬리만한출장비가 있기는 했습니다.
검찰은 이부장판사와 저에 대해 뇌물수수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사법파동이 일어나게 됐습니다. 사법파동은 그후 사법권 수호운동으로 번지게됐습니다.
△서변호사:사법파동 당시 저는 대구고법 부장판사였습니다. 이유가 어떻든 법관이 변호인으로부터 편의를 제공받은 것은 떳떳지 못하지만 대응방법이 과했습니다. 법관은 단체행동을 할 수도 없고 오로지 판결로만 말할뿐이라는 고민도 있었지만 이 사태는 사법부 전체의 운명이 걸렸다는 게 당시 대구지역 법관들의 공론이었습니다.
당시 임항준원장등과 상의,작성한 선언문의 내용은 검찰의 상식밖의 처사를 논박하는 한편 사법부 독립을 위한 제도적 장치와 사법부 스스로의 반성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사법부도 반성해야 한다는 데서 이른바정풍운동이 일어나게 된 겁니다. 그러나 결론은 신통치 않았습니다. 곧이어유신이 발동돼 유야무야로 끝난 것으로 기억됩니다. △사회=법원의 판결을보면 권력의 압력에도 불구, 흔들리지 않고 맞서온 사례들이 적지않습니다.건국 후 최초의 필화사건인 대구매일신문 사설사건만해도 당시 법원이 사법부 독립과 양심을 지켜 내려고 노력한 흔적을 찾아볼수있습니다.△문변호사=매일신문 필화사건은 대구고법 판사로 있을당시 일부를 담당했습니다. 검찰이 매일신문 사설을 쓴 최석채주필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했으나 법원은 그 사설이 순수한 열정으로 쓴 글이며 결코 북한을 이롭게할 목적으로 쓰지 않았다고 판단,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당시분위기로는 무죄판결이 어려웠으나 항소심,대법원에서까지 무죄로 일관했습니다.
△사회=10.26사건은 우리나라 현대사에 획을 긋는 사건이었습니다. 당시서변호사께서는 대법원판사로서 소수의견을 냈다가 그후 강요에 의해 사표를 낸 것으로 알려지고있습니다.
△서변호사=어려운시대 어려운 판결이었습니다. 이제는 소수의견을 낸것을 많은 사람들이 이해해 줘 위안을 삼고있습니다. 소수의견을 낸지 얼마지나지않아 국보위에서 사표를 내라고 합디다. 소수의견을 냈던 대법원판사 중 민문기,양병호,임항준,김윤행판사도 같이 사표를 내고 대법원을 떠났습니다.
사표를 내고 대구에 내려와 변호사 사무실 간판을 내 거니 당시 법원간부가 "왜 개업했느냐,말썽이 일고있다"며 못마땅한 입장을 전해주기도했습니다.
△문변호사=그런일이 일어날때마다 지조와 기백을 보여준 선배 법조인들이 생각납니다. 그분들이라면 무슨일이 있더라도 그런 사태를 막아냈을 겁니다.
△서변호사=우리 법조사를 보면 훌륭한 선배들이 적지않았습니다. 을사보호조약은 국민적 동의를 받지 않았으니 취소함이 마땅하다고 주장한 변호사도 있었고 대한문앞에 도끼를 들고나가 내목을 치든지 내뜻을 받아라며 매국노들을 고발한 선배도 있었습니다.
△최원장=대구는 전통적으로 법조의 고향이라고들 합니다. 제가 판사를하는 동안 대구근무가 세번째입니다만 대구발령을 받을 때마다 동료선배들이 대구는 법관훈련소라며 격려를 하곤 했습니다.
△문변호사=김병로대법원장도 대구는 치외법권지대라고까지 했습니다. 전라도 어느 지역에서 이런일이 있었습니다. 참전했다가 전쟁이 끝나고 돌아오니 가족이 몰살당해있자 동네 사람들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전주지법에서 그는 사형선고를 받았으며 대구고법도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그러자 대법원은 이를 파기 환송했습니다. 그러나 대구고법에서는 다시 사형을 선고했으며 대법원은 또 내려 보내기를 3차례나 거듭한 끝에 결국 대법원이 아예 파기,자판을 한적도 있습니다. 대법원장이 사법부 기개를 조장해 놓고 스스로 당한 꼴이었습니다.
△사회=사법개혁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최원장=사회가 다양화되면서 법률 서비스의 수요도 다양화되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전문가에 대한 권위를 인정하기보단 이제는 봉사를 받으려고합니다. 다양한 사회에 걸맞는 법률 서비스를 위해서는 법조인의 증원은 불가피한 것으로 봅니다. 대법원도 지난해 개혁작업을 벌였으며 입법노력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법조계 실정을 무시해서는 혼란만 자초할 뿐입니다.
▲문변호사:법관은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사법개혁은 행정적인 사고방식입니다. 개혁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닙니다. 사법의 근본정신이 확고한 만큼전통을 갈고 닦아 계승해야합니다. 소송절차 같은 문제는 몰라도 근본틀을손대서는 안됩니다.
▲서변호사:이러한 사태가 오게된 데 대해 재야나 재조법조인 모두 반성해야 합니다. 논의가 계속돼 오는 동안 개혁의 방법 등을 놓고 일반인과 법조인의 생각이 전혀 일치되지 않았다는 게 무엇보다 아쉬운 일입니다. 과거선배들은 경제적 이익보다는 선비정신을 앞세웠지만 산업사회에서 경제적이익을 도외시하고는 무능한 생활인이 될 뿐입니다. 변호사 초임자들에게윤리강령을 교육할 때 이익에 앞서 품위를 지키라고 강조한적이 있습니다만 경제적 이익을 포기하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최원장:제도보다 그를 운용하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운영하는 사람이 용기와 소신을 가질 때 제도도 빛날 수 있습니다. 법관에게는 더욱 엄격한 자격제한과 교육이 강화돼야 합니다.
▲서변호사:지금까지 거론돼온 제도개혁 방법이 과연 성공할 수 있는가는의문입니다. 미국의 경우 사법의 정의만 있는게 아니라 변호사의 정의도 존재합니다. 미국과 일본의 법관은 국민으로부터 존경을 받는데 비해 그들보다 우수한 우리 법관은 왜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가를 생각하면 씁쓸합니다. 법조인의 목소리를 집단이기주의로만 보지 말았으면 합니다.▲사회:사법개혁차원에서 전관 예우문제가 지적됐습니다.
▲서변호사:전관예우를 받는 법관은 아마도 극소수일 것입니다. 재야나 재조 모두 어제의 동료를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 경우 처음 변호사 개업시 명색이 대법원판사를 지냈지만 새까만 후배에 의해 보석신청이 기각된일도 있었습니다.
▲문변호사:전관예우는 예절문제에 국한되는 것이지 사건을 봐 주는 일은있을 수 없습니다. 사실 전관예우는 외부에서 오해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전관예우를 받을것이라고 짐작,사건을 맡기는 사람들이 적지않습니다.▲최원장:법관은 양심에따라 공정하게 사건을 판결할 뿐입니다. 만일 전관예우를 한다면 이는 법관에 대한 불신만 키울 뿐입니다. 법조계 스스로도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철저한 자기단속이 있어야 합니다.
▲사회:끝으로 21세기를 맞는 사법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말씀해 주십시오.
▲최원장:급변하는 시대변화에 맞추기 위해서는 민주법원,봉사하는 법원으로 나아가야합니다. 과거의 나쁜관행을 지양하고 법관의 도덕심을 키워가야합니다.
▲문변호사:법관 스스로도 자질향상에 힘써야 하며 법원은 법관양성에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법관의 선발과정은 더욱 엄격하게 해야 합니다.▲서변호사:과거를 거울 삼아 발전의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사법부 독립의 존재의의는 정의와 양심의 대변자일때만 가능합니다. 이런 점에서 법조인은 자긍심을 가져야 합니다. 국민들도 법조인의 엘리트 의식을 고깝게 보지말고 키워 주어야 합니다. 법관이 자긍심을 가질때 21세기 사법부의 희망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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