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어느 장애인 노점상의 분신

입력 1995-04-21 12: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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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8일 밤의 일이다. 서울에서 한 장애인 노점상이 자신의 몸에 시너를붓고 불을 붙여 분신자살을 기도한 사건이 발생했다.거리에 좌판을 벌여놓고 카세트테이프를 팔아 하루하루흘 살아가던 장애인노점상 최정환씨는 이날 낮 단속반원에게 스피커 배터리를 빼앗겼다. 그날저녁 그는 배터리를 찾으러 구청 당직실을 찾아갔지만 누구도 관심갖는 사람이 없었을 뿐 아니라 돌려줄 생각도 하지않자 그 자리에서 분신했다.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13일만인 21일 숨졌다. 이 사건은 신문에 따라 다르지만 거의 1~2단 기사로 짤막하게 다뤘을 뿐이다.

*사회적 관심 못모아

80년대의 이른바 '민주투사'들의 분신이 '분신정국'이라는 말을 만들어낼 정도로 사회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데 비하면 이번 최씨의 분신은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채 그대로 묻혀버렸다.

언론 만큼이나 정부당국의 대책도 냉담했다. 사실 대책이라고 할 수 있는 어떤 조치도 없었다. 오히려 경찰이 나서 장애자들의 연대 시위를 진압하기만했을 뿐이다.

며칠 전에는 합격점을 받고도 기업체와 공무원 임용시험에 번번이 떨어진 한장애인 청년이 지자체를 상대로 낸 행정소송에서 승리했다는 반가운 소식이있었다. 이번 소송에서 이긴 정광용씨는 국민학교때 폭발물 사고로 손목을잃은 장애인이다. 그는 성적이 뛰어났지만 졸업후 9년여 동안 수많은 기업입사시험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최종면접에서 늘 장애인이라는 이유로거부당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난 93년에는 충남도가 실시한 7급 행정직 공개채용시험에 응시했으나 역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낙방하고 말았다. 군복무자에 대한 가산점 적용을 받지 못해 등위가 밀려난 것이다. 군대를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장애인이었기에 받아야 하는 억울한 피해였다. 정씨는 이 억울함을 법에 호소했고 법은 정씨의 손을 들어주었다.

*초라한 장애인복지

이 두사람의 사례는 우리나라 장애인 문제의 심각성을 그대로 보여준다.정부의 장애인복지정책은 실로 초라하기 그지없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별이 없는 통합사회를 구현한다는 허울좋은 구호만 요란할 뿐 실속은 찾을수 없다.

지난해 여름 뉴욕의 명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대대적인 개보수작업을벌였다.

이 빌딩이 대대적인 공사를 벌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미국장애인 권익옹호협회가 "미국의 상징인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추지않아 큰 불편을 주고 있다"며 법무부에 장애인 차별빌딩으로 고발했기 때문이었다. 미국에서는 이처럼 장애인에게 사소한 차별이라도 법적 제재를 받게된다. 그 근거법이 ADA다.

'장애를 가진 미국인을 위한 법(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 of 1990,ADA)'이라는 긴 이름을 가진 ADA는 장애인의 완전한 참여와 평등을 보장할뿐만 아니라 이를 위해 시설, 고용, 교육은 물론 전기통신분야에 이르기까지폭넓게 구체적인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미장애인법의 교훈

ADA는 장애인 문제를 복지나 서비스의 관점이 아니라 차별금지라는 개념을통해 풀어나가고 있으며 이 법의 확실한 이행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까지완비하고 있어 장애인 관련법의 교과서로 불린다.

사회에서 소외된 장애인이 스스로 몸을 태워 삶을 마감할 수 밖에 없는 참극이 빚어지는 사회, 법적 투쟁을 벌여야만 직장을 얻을 수 있는 사회, 우리는이런 사회를 복지사회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주간 장애복지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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