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도시의 푸른나무(85)

입력 1995-04-13 08:00:00

"키유왔구나. 마두도. 들어와. 마둔 오랜만이야"채리누나가 기요와 나를 맞는다. 채리누나가 쇠문을 닫는다. 빗장을 지른다.채리누나는 쌍침형의 애인이다. 마른 체격에 눈이 크다. 얼음판에 넘어진 황소 눈 같다. 채리누나는 하늘색 원피스를 입고 있다. 검정 재킷을 걸쳤다.기요가 비닐봉지를 채리누나에게 준다.

옥상 뒤쪽에 조립식 철제 건물이 있다. 건축공사 현장에 있는 임시 사무실같은 거다. 한쪽 보호벽을 따라 간이화단이 있다. 화단에는 키 작은 철쭉나무 한 그루가 있다. 옥상에는 잡동사니들로 어수선하다. 가건물 문이 반쯤열려 있다.

"형님, 마두 데려왔어요"

기요가 쌍침형에게 말한다. 나를 돌아본다. 쌍침형이 휠체어에 앉아있다. 나는 형의 옆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다. 광대뼈에는 피딱지가 앉았다. 양쪽 팔에 붕대가 감겨 있다. 오른쪽 다리는 깁스를 하고 있다. 사람꼴이 아니다.인희의 학습교재 조각그림 맞추기 같다. 여러 모양의 마분지 조각들이 있었다. 그걸 틈새 없이 맞추면 한 장의 그림이 되었다. 목장의 얼룩소가 된다.아이들이 놀고 있는 놀이터가 된다. 아버지, 엄마, 아들, 딸이 있는 가족이된다. 나는 인희와 조각그림 빨리 맞추기 시합을 했다. 내가 늘 졌다.-흉하지? 경찰봉에 맞았어. 나흘만에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가 말했다. 머리와 손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함께 온 엄마가 아버지를 부축했다. '바른교육실천협의회'회원들이 교육청 마당에서 농성을 벌였다고 엄마가 말했다. 경찰의해산 명령을 어겨 모두 끌려갔다는 것이다.-안 끌려가려 버티니 다칠 수밖에. 저 양반하구 주동자 몇이 구류를 살았지 뭐예요. 엄마가 할머니에게 말했다. 얼마뒤, 아버지는 학교에서 '잘렸다'.

나는 머리를 숙이고 쌍침형 앞에 서 있다. 형님께 사과해, 하고 기요가 내게속달거린다. 나는 목이 메어 말을 할 수가 없다. 가슴이 마구 뛴다."내가 마두 널 찾아오라 했어"

쌍침형이 내 쪽을 보지 않고 말한다. 화난 목소리가 아니다. 눈은 텔레비전화면에 주고있다.

"잘못해, 했습니다"나는 꾸벅 절을 한다.

"여길 찾아올줄 몰랐냐?"

"예"

"온주시 식당에 있었담서?"

"예"

쌍침형은 나를 보지 않는다. 텔레비전 화면만 본다. 화면에는 조폭(조직폭력배)들의 칼질과 격투가 한창이다. 치고, 차고, 함부로 부순다. 쓰러지고, 떨어지고, 피 흘리고, 죽는다. 죽으면 조각그림처럼 맞춰도 살아나지 않는다.치료하고 붕대로 감아도 살지 못한다. 쌍침형은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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