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도시의 푸른나무(73)

입력 1995-03-29 08:00:00

식당이 쉬는 날이다. 아침밥을 먹고 난 뒤다."시우야, 네 방 깨끗이 치워. 이불과 요대기는 뒤란 볕에다 널구"인희엄마가 말한다. 내가 골방을 물걸레질하고 난 뒤다. 연변댁이 온다. 인희엄마와 연변댁이 김치를 담근다. 나는 식당 앞을 비질한다. 꽃집 앞도 쓸어준다. 지난번 쉬는 날 이후, 미미는 며칠 꽃집을 비웠다. 하루는 꽃집 셔터가 그대로 내려져 있었다. 이튿날은 미미 이모가 꽃집 문을 열었다. 미미는 다음 다음 날에 꽃집으로 나왔다. 나 설악산 갔다 왔다. 마지막 눈 구경을 했어. 미미가 핼쑥한 얼굴로 말했다.

나는 수저를 마른 수건으로 닦는다. 연변댁이 김밥을 말고 있다. 인희가 김밥말이를 구경하고 있다. 인희는 노랑색 유치원모를 쓰고 있다. 노랑 코트에노랑 가방을 메고 있다.

"아저씨, 우리 소풍간다"

인희가 내게 말한다.

"총각, 우리 셋이 소풍 가요. 아주머니가 바람 쐬구 오랍네다"연변댁이 내게 말한다. 인희엄마는 방에서 화장을 하고 있다."연변댁, 객지살이 외롭다구 몸 풀 생각은 마슈"

인희엄마가 방에서 말한다.

"몸 풀다니, 무슨 말입네까?"

"시우 순진하다구 따먹지 말란 말이에요. 우리 인희 잘 챙기구""무슨 그런 말씀을. 강나룻집두 그런 수작질이 겁나 그만뒀다지 않았습네까.주방장 김씨가 어떻게나 협잡하던지, 밤만 되면 무서워 잠을 못잤습네다"연변댁이 얼굴을 붉히며 말한다. 연변댁이 김밥을 플라스틱통에 담는다. 깍두기를 위생비닐에 담는다. 젓가랑을 챙긴다. 물통에 물도 채운다. 삶은 달걀과 소금봉지도 신문지로 싼다. 귤도 몇알 넣는다. 그 모든 걸 보자기로 묶는다. 연변댁이 바바리코트를 입는다. 머플러로 목을 싸맨다."총각두 위에 뭘 입어요"

연변댁이 말한다. 나는 봄점퍼를 입는다. 인희엄마가 지나가는 리어커에서사준 홑점퍼다. 몸통은 검정색, 칼라와 소매는 회색이다.

"강바람 쐬구 올게요"

연변댁이 먹거리 보퉁이를 든다.

"엄마, 갔다올게"

인희가 깡총거리며 홀을 나선다.

"연변댁이 잠시라도 한눈 팔면 안돼요. 잃어버리면 둘 다 집 못찾아올테니"머리채를 빗질하며 인희엄마가 내다본다. 우리 셋은 큰길로 나온다. 봄볕이따사롭다. 버스정류장으로 간다. 몇 대의 버스를 보내고, 우리는 버스를 탄다. 버스가 그린은행 앞을 지난다. 회색 소형차가 꽃집 골목으로 꺾어든다.노경주의 차도 회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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