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축이던 실개천은 사라지고…

입력 1995-03-28 00:00:00

모심기 끝난 논엔 개구리밥이 녹색 융단으로 덮여있고 물꼬근처엔 배볼록한올챙이들이 오글오글 신나게 헤엄을 쳤다. 재수좋은 날엔 배가 노리끼한 미꾸라지들을 한 웅큼 잡을 수도 있었으며, 가을엔 벼 익는 내음 가득한 논배미마다 벼색깔을 닮아 누레진 메뚜기떼가 툭 툭 튀어올라 개구쟁이들의 손에들린 풀대엔 대가리 꿰인 메뚜기 수가 자꾸만 길어졌다. 벼그루터기만 남은겨울 논에선 구멍이 폭 폭 뚫린 곳을 칼로 헤집으면 구멍마다 동그란 논고둥이 잡혀나와 반찬없던 밥상에 고둥무침으로 또는 구수한 국으로 올라왔다.광복무렵인 50년전, 아니 20여년전까지만해도 우리 눈에 익숙했던 정경들이다. 적어도 그때는 자연과 우리가 합일했었다. 현재 40대이상 중년층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자연은 고향의 품처럼 정답기만하다. 산으로 들로 벌망아지처럼 뛰어다니다 목마르면 실개천물로 목을 축였고, 여름밤 마당의 멍석에 드러누워 눈앞으로 쏟아질듯한 별들을 보며 '별하나 나하나,별둘 나둘…'헤아리다 잠들었던 추억을 생생히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시정 풍부한 사람들은출출 비를 맞으며 거리를 쏘다녔고 함박눈이 내릴때면 소꿉친구와 눈송이를뭉쳐 먹었던 우리였다.그런데, 해방 50년이 지난 지금 자연은 엄청나게 달라져버렸다. 세계가 주목한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동안 우리는 중요한 것 한가지를 간과해버린 것이다. 자연은 언제나 '주기만하는 나무'가 아니라 때로는 인간에게 '무서운 복수의 칼날'을 들이대기도 한다는 사실을.

'잘 살아보세'를 지상과제로 경제개발의 미명아래 앞뒤 돌아보지 않고 달려와 현재 국민총생산 세계 11위라는 '세계속의 한국'으로 성장해오는 과정에서 우리모두 아무 생각없이 자행해온 결과가 지금 '환경파괴'라는 대재해에맞닥뜨리게된 것이다.

60~70년대 조성된 울산,온산공단의 외국투자기업의 90%정도가 공해산업이었으며 결국 85년 온산공단지역 주민에게 발생된 집단괴질사건은 우리 모두가지나쳤던 공해문제의 심각성을 극명하게 드러낸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공해'라는 단어가 일반대중들에겐 피부로 와닿지 않았다.

그러다 91년 두산그룹의 낙동강 페놀방류사건이 터졌다. 대구·부산지역전체가 악취나는 식수로 고통을 겪었고 임산부들의 유산항의가 터져나오는 등 전국이 시끌벅적했다. 낙동강오염사건은 한강,영산강 등 전국의 강들이 심각하게 오염됐다는 사실을 일깨웠으며, 너도 나도 물을 사마시기 시작했다. 낙동강 페놀식수사건은 깨끗한 물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형성과 함께 본격적인 환경보호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곪은 상처는 결국 터져나오기 마련. 예전엔 놀다넘어져 긁힌 다리에 흙한줌 쓱 발라도 파상풍감염의 걱정이 없었던 이 땅이 농약과 화학비료사용,공해산업체들의 폐수방류,산업쓰레기 급증 등으로땅이 급속하게 썩어들어가면서 고통의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1회용품 사용과 생활쓰레기의 양산 특히 연 8조원에 이르는 음식물쓰레기는 전국토를 쓰레기더미화하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낳기도 했다. 또한 마이카붐과 더불어 현재 7백여만대로 늘어난 각종 차량들로 공기는 눈이 따끔거릴 정도이며 흰옷은 몇시간만에 목깃이 새까매진다. 수백미터 상공에서도 말갛게 내려보였던대구시내 전경이 이제는 대구타워 꼭대기만 보일뿐 뿌연 스모그에 가려져 안보이는 사실도 새삼스럽지가 않다. 한마디로 땅속과 땅위,하늘 모두가 중병을 앓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자멸이라는 위기의식이 확산되면서 공해추방운동연합,대구의푸른평화운동, 각 여성단체 등이 합성세제안쓰기, 1회용품안쓰기 등 환경운동을 펴기시작했고 서서히 결실은 맺혀지고 있다. 자발적인 환경운동을 펴는사람들이 늘고 벌레먹은 유기농법의 채소가 새삼 인기를 끌고 있다. 반면 휴일마다 허연 물통을 든 물통부대가 산을 메우고 산성비를 두려워해 비를 맞는 정취는 사라져갔다.

공해는 우리나라뿐아니라 세계공통의 문제이기도 하다. 현존 동식물의 약 절반이 서식하는 열대지방의 삼림이 1초에 축구장 1개만한 면적꼴로 파괴되는사실이 우리를 두렵게 한다. 컴퓨터분석에 따르면 대기중 탄산가스축적으로21세기중반엔 지구평균온도가 섭씨 2~5도 상승, 해수면 상승과 염화현상에따른 농지피해,방사능오염 등에 의한 안전식수부족 등 자연의 대보복이 예상되고 있다.

아무튼 뼈아픈 낙동강 오염사건을 겪으면서 이제 우리국민들은 '내가 오염물질의 배출원이자 피해자'라는 인식을 하게됐으며 올해 1월부터의 쓰레기종량제실시는 환경보전과 재활용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됐다. 대구시에서도97년 완료를 목표로 낙동강 제1, 제2수원지에 고도정수처리시설을 추진하고있는 등 지방화시대를 맞아 환경보전이 곧 주민의 안전생활을 보장하는 키포인트로 부각되고 있다.

광복 50년이 흐른 지금 우리가 체험한 산 교훈중의 하나는 바로 '건강한 환경이 건강한 우리를 있게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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