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자양 복권 수면위 부상

입력 1995-03-22 08:00:00

지난18일 폐막된 제8기 3차전인대(전인대)기간중 사석에서나마 조자양의 복권이 거론됐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짐으로써 등소평사망후의 죽국 정치에다양한 판도가 전개될 것을 예고해 주고있다.더구나 조의 복권을 주장한 사람이 가뜩이나 중앙과 지방의 '모순'이 확대돼가고 있는 중국사회에서 인구 1억이 넘는 농업의 대성인 사천성의 현직성장인 소앙 에 의해 제기됐다는 점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소앙은 전인대기간중 "사천성의 농촌개혁은 조자양의 경험을 통해 성공했다는 사실을 중시해야 된다. 그는 등소평의 개혁, 개방노선을 집행했다. 89년의 6·4천안문사태의 '착오'때문에 그의 업적을 부정할수는 없다. 천안문 착오와 그의 업적은 당연히 분리, 평가돼야한다"면서 그의 복권을 강력히 주장했다.

소앙이외에도 복건성의 공민 13명이 연명으로 조자양의 복권을 주장하는 공개 서한을 전인대에 제출했다는 사실도 뒤늦게 밝혀졌다.

조자양이 현재의 시점에서 다시 부각되는 이유는 중국의 농업문제, 식량 자급문제가 당면 중국의 최대 현안중의 하나로 부각되고 있는 사실과 무관하지않다.

세계의 경지면적 7% 인구는 세계의 22%를 점하고 있는 중국이 개혁, 개방의여파로 공업화는 날로 가속화, 전국적으로 경지면적은 갈수록 줄어들어 단위면적당 수확량을 제고시키는 것이 중국농업의 최대 과제다.조자양이 사천성 당위원회, 서기시절, 획기적인 곡물 증산의 공을 등소평으로부터 인정받아 일약 중앙정부의 총리로 발탁된 사실은 중국인 누구나 알고있다.

사천성에서는 아직까지 "밥을 먹으려면 자양을 찾아라(요흘량 아자양)"는 말이 남아 있을만 큼 그는 중국농민에게 잊을수 없는 존재가 됐다.조자양이란 이미지는 농촌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도시의 대다수 지식인들은 천안문 사태 당시 계엄령 선포를 끝까지 반대함으로써 권좌에서 축출됐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이제 남은 문제는 등소평 사망후 그의 복권과 관련한 여러가지 예측이다.대체로 가장 큰 가능성은 현재와 같은 연금상태가 지속되리란 것이 적지않은중국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두번째로는 당·정·군의 적지않은 조자양 지지파들이 공개리에 그의 복권을쟁점화하는 것이며 세번째는 조자양의 지지파들이 본격적으로 행동에 옮기고아울러 민간의 지지세력까지 가세, 현재의 당권파들에게 중대한 위기를 안겨주는 것.

이같은 상황이면 중국은 또 한차례의 정변, 혹은 사회적인 동란이 불가피해진다는 것이 일반적인 예측이다.

마지막으로 당·정·군의 유력인사들이 조자양의 복권을 공론에 부쳐선거를통해 그의 거취에 대한 결말을 짓는 방법이다.

아무튼 중요한 사실은 등소평 이후의 중국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든 조자양이란 변수는 이미 작용을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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