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지하철 독가스 테러

입력 1995-03-21 08:00:00

불특정 다수의 인명을 노린 신종 독가스테러에 일본열도가 소연하다. 20일거대도시 도쿄도심의 출근 러시아워에 만원 지하철에서 발생한 동시다발 맹독가스 중독사건은 화학물질 '사린'살포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린'은1㎎미만의 가스만 마셔도 신경이 마비돼 목숨이 위태로울 만큼 청산가리의최고 5백배에 달하는 독성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작년 마쓰모토(송본)독가스사건에 이은 악랄한 무차별살상시도가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이날 사건은 도쿄시내 중심가를 달리는 지하철 히비야(일비곡)선과 치요다(천대전)및 마루노우치(환ノ내)선등 3개노선의 15개역에서 아침 8시 직후 거의 동시에 발생, 불과 30분사이 4천여명이 피해를 입었다. 이는 범인이 복수그룹이라는 점과, 출근시간대 다수인명을 노린 계획적 범행임을 알게한다.피해가 특히 심한 노선은 히비야선으로 중앙어시장이 있는 쓰키지(축지)역과가스미가세키(하ケ관)역및 인근의 가미야초(신곡정)역등이었다.아직 범인들의 윤곽과 의도등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가스미가세키의 경우 3개노선이 교차하는 대형역인데다 일본의 주요관청이 밀집한 지역이어서 범인들이 이곳을 목표로 한게 아닌가하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목격자등의 말에 따르면 사건당시 지하철 선반에 놓여있던 병이 떨어져 깨지면서 나온 가스로 승객들이 입과 코에서 피를 흘리며 의식을 잃고 차례로 쓰러지거나 차내 바닥에 신문지로 싼 작은 상자에서 스며나온 액체의 자극성냄새로 중독 혹은 의식불명에 빠졌다. 경찰과 자위대등이 현장에서 수거한 물질을 분석한 결과 맹독성 '사린'과 독성용해제 '아세트니트릴(시안화메틸)'의 혼합물로 밝혀졌다. 또 승객중 범인으로 보이는 2명이 수상한 비닐봉지등을 갖고 있었음이 노선이 다른 지하철에서 각각 목격돼 복수의 범인이 사린과 아세트니트릴의 혼합독극물을 차내에 놓고 사라지는 방법으로 범행했음을입증해 주었다.

원래 사린은 독성이 강해 운반자체도 위험하다. 전문가들은 따라서 범인들이아세트니트릴을 혼합, 농도를 낮춰 운반위험 최소화를 꾀한 상당수준의 화학물질 취급자들로 추정했다.

이노우에(정상상영) 교수(규슈대·위생학)는 사린을 합성하기 전에 유기인계화합물과 알콜의 일종을 용기안에 따로따로 칸막이를 설치해 비치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두가지 물질을 분리해 두면 그 자체는 아무런 해가 없으나 일정 시간이 지나면 칸막이가 썩으면서 양자가 섞여 저절로 사린이 된다는 것.독극물 권위자인 구로이와 유키오(흑암행웅) 쇼와대병원 약제부장도 독성이강하기 때문에 범인이 현장에 사린을 운반했을 가능성은 적으며 스위치를 누르면 작동하도록 장치해 자연히 구멍이 열려 밖으로 사린이 누출되도록 시한장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전문가들은 화학합성에 매우 조예가 있는 대학원 정도의 지식이 필요하다고입을 모으고 있다.

일본에서는 작년 6월29일 심야 나가노(장야)현 마쓰모토시 주택가에서 원인불명의 사린가스가 번져 순식간에 7명이 죽고 2백20여명이 중독증세로 치료를 받았으나, 지금까지 범인을 밝혀내지 못한 상태다. 그러나 그후에도 이번사건 5일전인 지난15일까지 3건의 유사사건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모종의조직적이고 계획적인 그룹이 잇따라 범행을 저지르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추측으로 시민들이 공포에 싸여있다. 즉 작년 7월9일 도쿄인근의 야마나시(산이)현에서 악취소동이 일어 경찰감식결과 사린잔류물이 검출됐었고, 올들어지난6일 자정께 요코하마시내를 달리던 게이힌전철 차내에서 이상한 가스로승객20여명이 중독, 염소계약품에 의한 것으로 판명됐다. 또 15일에는 도쿄시내 마루노우치선 가스미가세키역에서 역시 출근시간에 수상한 상자3개에서가스가 분출하는 액체가 발견돼 소동이 벌어졌었다.

경찰과 시민들은 '세계제일의 치안'을 자랑하던 일본의 수도에서 세계초유의악랄한 살상사건이 시도됐다는 데 경악하는 한편, 범인들의 윤곽과 범행의도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존재감 과시의 목적이 있는 테러단체가 아니면다수의 인명을 노릴 만한 무슨 원한이 있느냐는 것이다. 이와관련, 심리학자들은 범인들이 과대망상과 대중혐오증에 빠진 자들 일지 모른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조치(상지)대학의 후쿠시마(복도장·범죄심리학)교수는 "동시다발적 범행으로 보아 집단에 의한 확신적 범행"이라며 "사회에 대한 반감과그 의사표시가 목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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